논단

아주 특별한 초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12-10 23:37
조회
3042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1번째 원고입니다(061211).


아주 특별한 초대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는 동네 부근 음식점에서 온 전화였다. 내 이름을 확인한 후 어떤 분이 나를 대접하라 해서 전화하노라고 했다. 나를 대접하라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건 오면 말해주겠다고 한다. 영문도 모르는 채 내가 누구의 대접을 받느냐며 다그쳐 물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편한 때 한 시간 전쯤 연락을 주고 꼭 찾아오라는 음식점 주인의 권유만을 재삼 받은 후 일단 전화를 끊었다.


도통 뜬금없는 전화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누가 무슨 사연으로 나를 대접하겠다고 하나? 목사로서 심심치 않게 엉뚱한 전화들을 받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지역 정치인이거나 관련되는 사람은 아닐까? 내가 지역 정치인의 면담 요청을 받아야 할 만큼 명사는 아니지만, 지역 사회에서 무명의 존재는 아니다. 사는 시골동네에서야 조용한 서생으로 알려져 있어도 동네 밖 지역 활동에서는 단체 대표도 맡고 있고, 여러 단체들에 관여도 하고 있다. 가끔 지역신문에도 얼굴을 내밀다 보니 종종 엉뚱한 인사를 받기도 한다. 순전히 자의적인 시나리오에 불과했지만, 그런 정황 탓에 아마도 모종의 정치적 저의가 숨어 있는 대접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이 그렇게 미치니 결론은 뻔했다.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삶을 살고 있는데, 영문도 모른 채 또 어딘가에 얽히게 될지 몰라 마음속으로 단호히 사양하기로 했다. 정말 순수한 뜻으로 대접하기를 원한다면 다시 연락이 오겠거니 한편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냥 잊어버렸다.


얼마 지나 다시 전화가 왔다.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영 나타나지 않으니 음식점 주인장은 다시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말했다. 아, 이런! 미국에 사는 친구 장 목사의 부탁으로 주인장은 대접의 임무를 띠고 있었다. 병을 앓아 죽다시피 하다가 살아난 친구에게 보양식을 대접하려는 친구의 배려요 기상천외한 초대였다. 곁에 살고 있지 않으니 그 머나먼 곳에서 내가 사는 동네 음식점을 수소문해 대접을 맡긴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붙은 음식점을 찾으면 확실하다 싶어 그리 한 모양이다. 내가 음식점에 출두하지 않는 동안 여러 차례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의심이 많았구나 싶었다. 동시에 그 친구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마치 곁에 선 친구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이미 감격했지만, 그리도 정성을 베푸는 데 어찌 나서지 않으랴! 주일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가족과 함께 나섰다. 친구의 정성에 감복한 주인장은 더더욱 극진한 정성으로 오골계 백숙을 준비해놓았다. 이래저래 정성이 담긴 음식 맛도 그만이었지만, 그 식사는 단순히 밥 한 끼를 먹는 일이 아니었다. 온 몸으로 사랑을 받아먹는 일이요 행복을 내 몸 깊이깊이 간직하는 일이었다.


“장 목사! 이럴 땐 ‘고마워!’ 그 말을 넘어서는 그럴 듯한 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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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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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2
  • 2006-12-26 12:07
    제가 어떤 보양식을 먹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사진을 올립니다.

  • 2007-01-05 11:53
    그런 친구를 두신 두분 목사님이 너무 부럽네요~ 삭막한 이 세상 가운데에 한 줄기 따뜻한 살림의 기운이 느껴져 뭉클합니다! 늘 한결같은 우정 잘 살려가세요!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