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다 혼나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9-19 13:00
조회
310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47번째 원고입니다(060919).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다 혼나다


공사다망(公私多忙)하면 공사(公私)가 다 망(亡)한다고 했던가? 공사다망한 가운데서도 공사를 한꺼번에 잘 아우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우스갯소리다. 밖에서는 찬사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가족의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다. 대의에 충실한 사람이 사소한 일에는 둔감한 경우도 있다.

맡겨지는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허덕이다 보면 불가불 한쪽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사생결단의 절박한 위기상황에서 어느 한편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은 중대한 사태는 아닐지라도 한편의 일을 슬쩍 미뤄둘 수밖에 없는 사태는 심심치 않게 겪는다. 이 때 유보당하는 것은 사적인 일들이다. 지난여름 휴가 때도 가족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간의 흐름을 잠시 망각하고 즐겨야 할 휴가마저도 긴급하게 돌아가는 한미FTA 대응 문제로 과제를 맡는 바람에 서둘러 그 일정을 단축하고 귀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가족의 원성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미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목회자로서도 교우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늘 대의에 충실한다고 이 일 저 일로 분주하다보니 좀더 내밀하게 다가서 살펴야 할 일들을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목사는 교회만의 목사일 수 없다는 목회적 신념을 공공연하게 표방하고 그걸 공감해주는 교우들이 함께 해주어 행복하지만, 목회자로서 마음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잘 챙기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늘 스스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전 마치 하늘의 계시와 같이 마나님의 일갈이 떨어진다. 늘 그렇듯이 골몰하는 문제가 있으면 책을 읽다가도 마나님 앞에서 주절주절해댄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사명감의 소치일 수도,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고자 하는 수작일 수도 있다. 너그러운 마나님께서는 늘 대화에 잘 응해주시는 편이지만 이 날은 달랐다.

밥상머리에서 “열린우리당이 말이야.... FTA가 말이야....” 하는데, 대번에 “나 관심 없거든요” 하신다. 가만 보니 작은 녀석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밥 숫가락질만 부지런히 해대고 있었다. 허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군! 짐작을 하고 사태파악에 나서니, 고단한 몸으로 온갖 집안일에 밥상 차리는 일을 도맡아 하시던 마나님께서 애꿎은 딸에게 이미 한판 쏘아대고 난 상황이었다. 혼자서 쿵쾅대며 이 일 저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거드는 사람이 없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달래려 했지만 이미 부아가 치민 마나님의 심사를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더 이상 말문을 열지 못하고 설설 기는 수밖에 없었다. 앗, 그런데 이게 왠 호재인가? 안방에 아직 개키지 않은 빨래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다소곳이 빨래들을 개켜놓고 태연스레 있었더니만 그때서야 마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신 모양이다. 일촉즉발 위기의 상황을 그렇게 모면했다.

사소한 일, 그렇게 살짝 배려하는 마음만으로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데 그걸 잘 못하고 있으니 마음공부 아직 한참 더 해야 할 모양이다.
16.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2
  • 2006-10-03 22:58
    전 목포의 평범한 50대 집사입니다. 목사님의 인터넷교회를 자주 들르는 사람입니다. 유용한 자료와 정감있는 인간미가 넘치는... 가깝다면 주일마다 찾고 잪은데... 오늘도 목사님의 가정사 애기에 은혜가 찡하니 밀려오네요~ 너무나 공감가는...ㅎㅎ ^^
    rn교회와 가정이 언제나 평안하시기를... 모든이를 살리는 사명을 더욱 넓혀 가시기를 빕니다!

  • 2006-10-04 01:03
    고맙습니다.
    rn저쪽 사진방에도 목포의 어떤 분이 흔적을 남기셨길래 저는 제가 아는 분인가 했습니다. 내일도 추석 쇠러 목포에 갑니다만, 형님댁이 있어서...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분이 아니신 듯합니다만, 어쨌든 반갑고 고맙습니다.
    rn우리 전통예법으로 말하자면, 차린 건 없지만 맘껏 드시고 목도 축이시고... ㅎㅎ
    rn자주 들르시고, 내키시면 오늘처럼 종종 흔적도 남겨 주십시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