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개가 주인을 생각할 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1-11 17:04
조회
3253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2번째 원고입니다(060111)


개가 주인을 생각할 때...


사람 사는 이야기로도 할 말이 많은데, '개소리'를 꺼내자니 주저된다. 하지만 병술년 '개의 해'라고 한마디씩 하니 그에 편승하여 그 동안 묻어둔 개 이야기 한 마디 해야겠다.

우리 집에는 슬픈 개 한 마리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돌봐주고 있지만 나만 보면 오금을 추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녀석이다. 아예 사람 보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딴 집에서 자라던 놈들도 데려다 키우면 이내 정이 들고 주인을 따르는 게 개의 습성인데 태어날 때부터 돌봐주는 주인인데도 두려워하기만 한다. 그 두려움을 가시게 하려고 매 끼니를 내 손으로 꼬박꼬박 챙겨주고 때로는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기를 반복해도 도통 소용이 없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줄라치면 진짜로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이 녀석이 그리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자기 눈앞에서 함께 살던 부모형제가 한꺼번에 붙잡혀 가는 참극을 겪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강아지 한 쌍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놈들이 같이 살다보니 후손들이 번성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분양을 해줬지만, 횟수를 더해가다 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아 네 마리가 남았다. 집 마당은 개판이 되기 시작했고, 하는 수없이 헛간 옆에 개장을 짓고 몰아넣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울안에서 살다보니 소란을 피울 때도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옆집 사람이 심심치않게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아예 노발대발하였다. 밤잠을 설칠 때도 있으니 제발 개들을 치워달라고. 개 때문에 사람 사이에 의가 상하겠다싶어 홧김에 개장사를 불러 개들을 실어 보내고 가장 어린 이 녀석만 남겼다. 그러니까 이 녀석은 같이 살던 부모형제가 사랑스럽게 주인 품에 안기는가 싶었는데 모두 다 어디로 사라지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참극을 겪었다. 이 주인은 그 잔혹극을 벌인 장본인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 주인인지라 마음을 열 수 없는 것이다. 그 죄 때문에라도 너 목숨 다하는 때까지 돌봐주겠다고 말을 해도 통 알아먹지 못한다. 그 사태가 있고 1년쯤이 지난 지금 먼발치에서는 꼬리를 흔들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여전히 마찬가지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하느님, 저는 우리 집 개가 저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바로 그런 인간이 되고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뿔사! 이 기도문은 나에게는 저주의 주문과도 같은 것 아닌가? 나는 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그렇게 냉혹하고 잔인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올해는 제발 화해하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쳐도 모자라는 세상에서 그렇게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 존재로 영영 기억되어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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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2
  • 2006-01-23 16:51
    표정이 정말 실감나네요....

  • 2006-01-25 00:16
    여전히 두려워하는 눈빛이 역력하지요? 녀석 참...!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