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위기의 남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4-02 23:16
조회
302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7번째 원고입니다(060402).


위기의 남자


이른 아침부터 일본에서 온 손님들 모시고 온양에서 공주, 부여로, 그리고 다른 일로 다시 천안에서 서울로 바삐 뛰어다닌 하루, 그날 밤늦게 서울에 도착하자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아침식사 했어요?" 집사람이 묻는다. "그럼!"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설거지 하다보니 당신 아침식사가 그대로 있던데...!" 허 이 무슨 소리인가?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는데...!" 다시 의기양양하게 답했지만, 물증을 대니 황망해졌다.

자초지종을 말하면 이렇다. 내 아침식사는 아주 간단하다. 우유에 생식 가루 몇 숫가락 타서 훌훌 마시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아침식사를 할 때면 늘 커피를 함께 탄다. 그런데 그 날 아침 먼저 타놓은 생식은 제쳐두고 커피만 홀짝 마시고 급히 나섰던 모양이다. 그리고 하루종일 '든든한' 아침식사를 한 듯 착각하고 지냈던 것이다. 밤늦게 그 사실을 확인받고서야 "어째 점심때 허기가 진 것 같기도 하고..."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며칠 전에는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서울에서 20년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밤늦은 시간 귀가를 하였다. 기차역에서 내려 주차장에 세워 둔 차 문을 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허전하다. 열쇠가 없지 않은가? 이런 낭패라니! 80년대 대표적인 민중가요 가운데 하나인 <민중의 아버지>를 지은 친구 김흥겸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9주년을 즈음해서 친구들과 만났던 자리였는데, 슬픔과 기쁨이 뒤범벅된 자리에서 너무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말짱하게 설교까지 맡았건만, 열쇠가 주머니에서 흘러내린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택시 잡아타고 집에 있는 예비용 열쇠 가지고 나와 귀가하느라 무지막지한 왕복 택시비를 치러야만 했다.

그건 그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쇠가 빠져 나가버린 일이라 별 도리 없는 일이었다. 한데 버젓이 내 손으로 준비한 아침식사를 눈앞에 두고도 해치운 것으로 착각해버린 사태는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그 일이 있고 귀가해 교회 수요 성서연구를 마치고, 다시 다음 날 광주에서 있을 강의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집사람은 엄중히 경고를 한다. 이제부터 '위험관리 대상'이라고. 그렇게 정신없이 사니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무슨 명예욕이 있어서 이 일 저 일 맡는 것 아니고 그저 목사이기에 맡겨진 일 감당하는 것뿐인데, 그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일을 어찌 해야 한단 말인가? 심신의 안녕을 위해 나는 교회 밖에는 모른다고 선언해버릴 걸! 맡겨지는 일을 정중하게 사양하는 법을 누가 일러준다면 정말 고맙기 그지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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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2
  • 2006-04-04 08:22
    ㅋㅋㅋ...
    rn알아도 못 가르쳐 주지요^^
    rn이런 재미난 야그를 놓칠순 없지요 ^8^

  • 2006-04-04 10:48
    으아! 비법을 알 갈켜주고 게속 허둥대는 사태는 즐기겠다 이거지요?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