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삼 세 번이 아니면 어떠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3-20 01:08
조회
298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6번째 원고입니다(060320).


삼 세 번이 아니면 어떠랴!


승승장구 무패행진을 하던 한국 야구팀이 일본팀과의 세 번째 대결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 열기에 버금가는 열기 속에 그 세 번째 경기는 어째 딱 주일예배 직후 정오에 예정되어 있었다. 암만 구별된 시간이라 한들 그 들뜬 분위기가 예배시간을 비켜갈 손가! 예배 전부터, 그리고 예배시간에도 야구는 화젯거리였다. 우리의 신 집사는 "주님, 삼 세 번 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함께 신명나게 즐기시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기도하여 온 교우들의 미소를 자아냈다.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텔레비전을 켜놓고 온 교우들은 야구경기를 지켜보며 응원을 하였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그 간절한 소원 한 번 안 들어주시다니! 한 번 무너지는가 싶더니 와르르 무너져 결국 좌초하고 말았다.

그러나 삼 세 번 소원이 성취되지 않았다 한들 어떠리? 거기까지만도 이미 충분히 즐겼고 묘미를 맛보았으니 족하지 않을까나? 한국 야구팀의 예상 밖의 선전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주최국 미국의 좌초는 솔직히 말해 훨씬 고소하지 않았나? 남 잘 되는 것 못 보는 옹졸한 마음 때문이거나, 굳이 정치적인 유감을 스포츠에까지 덧씌어 질시하는 마음 탓이 아니다.

만천하가 알다시피 처음부터 미국은 상식 밖의 경기운영 방식을 취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상대는 결승에 가서나 만날 수 있게 대진표를 구성하는가 하면, 경기일정도 마음대로 바꾸려 했고, 자국의 경기에 자국 심판을 내세워 고의적인 오심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마구 저지르기까지 하였다. 가장 버거운 상대인 쿠바는 경제제재를 이유로 참여조차 막으려 했고, 마지못해 참여시켜놓고도 만일 쿠바가 우승할 경우 바로 그 경제제재를 이유로 상금도 가져갈 수 없도록 조건을 지웠다. 미국은 처음부터 자신들만의 잔치로 그 대회를 구상하고 계획대로 척척 진행했다. 그런데 한국의 선전으로 그 계획은 엉클어지기 시작했고 멕시코에마저 일격을 당해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강자독식의 법칙을 무력화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일 아닌가? 정치ㆍ군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스포츠에서마저 그렇게 노골적으로 강자독식의 법칙을 관철하려는 그 속보이는 짓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스포츠 경기에서나마 그 철칙을 뒤흔들어 무력화시킨 것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스포츠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 엄연히 다르지만 강자의 횡포는 그에 대한 강력한 저항 앞에서는 얼마든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신 집사! 공교롭게도 그 날 저녁 일본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축하한다"고 한 마디 건네며 파안대소 했다오. 그런 나를 매국노라고 몰아 부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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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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