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는 만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10-27 16:11
조회
3076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스물여덟 번째 원고입니다(051027).


아는 만큼


이년만에 일본 교토를 다시 찾았다. 내가 속한 노회와 일본기독교단 교토교구와의 협의회를 위해서였다. 지난 몇 년 동안 한해씩 번갈아가며 상호 방문을 하는 식의 교류를 지속해 왔는데, 이번에는 교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정책협의회 형식으로 만났다. "역사와 마주하는 교회"를 주제로 꼬박 하루 동안 진지한 토론을 나눴고, 교토의 교회들과 재일동포들의 삶의 현장, 그리고 교토의 역사 유적지 등을 방문하는 식으로 4박5일의 일정이 진행되었다.

채 1%가 될까말까하는 기독교인들이 일본 사회 안에서 어떤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4분의 1이 기독교인이고 그 규모로 치자면 세계에서 열 번째 안에 꼽히는 교회들을 여럿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으레 그런 물음을 떠올린다. 게다가 불행한 과거 역사 때문에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일본 사람 자체에 대한 거부감마저 갖고 있다. 우리측 방문단의 일원 가운데서도 그런 생각, 그런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있었다. 교류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편견과 선입관에 매여 있지 않지만, 어쩌면 한국의 기성세대들에게는 그와 같은 생각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협의회에 참여하여 일본 기독교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교회 현장을 방문하면서 그분들의 생각이 많이 바뀐 듯하다. 때마침 고이즈미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고 난 직후라 일본 기독교인들은 그 문제의 심각성을 누차 강조하였다. 재일동포의 권익을 위해 많은 일본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헌신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 물결에 교회들도 휩쓸려가고 있는 현실을 걱정하며 비판적 소수자로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일본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나는 2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교회의 강단에 설 기회를 누렸는데, 예배가 끝난 후 설교 내용을 두고 그렇게 진지하게 질문하는 것은 한국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단순히 이국 목회자에 대한 예우와 호기심 차원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본 기독교인들의 진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저런 경험 덕분에 동행한 방문단은 일본 사람, 적어도 일본 기독교인에 대한 편견의 상당 부분을 불식할 수 있었다. 일본의 기독교인들이 정말 의미있는 비판적 소수자로서 역할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아는 만큼 감동한다고 하지 않은가. 처음 일본을 방문한 분들은 '일본놈들'이 아니라 '일본의 기독교인들'을 발견하였고 그 진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진지함과 그들의 헌신성에 감동했다. 아마도 그 경험은 국적과 국익을 넘어선 진정한 기독교인의 존재 의미 또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낯선 타인과의 만남은 그렇게 우리를 더욱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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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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