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의심과 불신의 미학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11-17 12:49
조회
3160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스물아홉번째 원고입니다(051117).


의심과 불신의 미학


이국 체험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이방인의 시선에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보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온다. 아직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한마디 더 보태자면, 세 번째 방문 후 느낀 것은 역시 일본사회는 잘 짜여진 사회라는 것이다. 안방과 마당이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모두 깔끔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거리에는 담배꽁초, 휴지조각 하나 쉽게 발견하기 어렵고, 집에서 가꾸는 텃밭은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사통팔달 뚫린 철길 위의 작은 간이역들은 단 한 명의 역무원이 없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안전차단기는 자동 제어되고, 표는 자판기를 통해 구하고 내릴 때 창문으로 기관사에게 건네주면 끝이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새삼 눈길을 끈 것은 음식점이나 가게집 한 귀퉁이마다 놓여 있는 방화용 물동이들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사태에도 즉각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해두는 일본 사람들의 철저함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한데 그 장면을 몇 차례 더 목격하자니 문뜩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하, 일본 사람들은 걱정이 참 많구나!' 그것은 모든 사태에 대비하는 철저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한 순간도 마음을 놓고 살아갈 수 없는 어떤 조건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오사카 성을 보면서 더 분명해졌다. 도요토미가 조선침략전쟁을 지휘했던 오사카 성은 그 규모의 위용에다가 적의 공격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태를 다 예비하여 시설을 갖춘 철옹성이었다. 웬만한 하천을 방불케 하는 이중의 해자에, 대포로도 뚫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바윗돌을 깎아 세운 성벽, 화공을 막기 위해 철갑을 두른 성문, 어떻게든 일직선으로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동선과 방어벽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구도를 갖추고 있었다.

'의심과 불신의 미학'이라고 할까? 교토의 니조 성은 자객의 침입을 사전에 막기 위해 마루바닥이 삐걱거리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오사카 성에는 그러한 시설이 한층 확대되어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완벽하게 짜여진 일본사회는 어쩌면 의심과 불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산된 치밀함과 조화는 어쩌면 의심과 불신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대외적인 차원에서의 전란과 위기보다는 오랫동안 지속된 열도 안에서의 치열한 주도권 쟁탈과 전란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현상이 아닐까 싶었다. 타인의 속마음을 믿기보다는, 서로 피해를 주거나 받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규칙이나 제도를 더 신뢰하는 일본사회 문화적 풍토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 풍토 속에서 살아가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을 만난 것은 특별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는데, 또 한편으로 문뜩 생각이 스친다. 의심과 불신을 바탕으로 하는 제도와 규범에 의존하기보다 진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는 어떻게 가능할까?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아우성치며 규칙과 제도로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겹쳐 떠오르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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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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