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청계천에 물은 흐르지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12-07 23:18
조회
3188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0번째 원고입니다(051207).


청계천에 물은 흐르지만...


교회를 시작한 것이 새 천년 첫 달 첫 주였으니 올해 말이면 딱 6년이다. 내년 첫 주일이면 7년째를 맞이한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안식년이 되는 해다. 어허, 별로 이룬 것도 없는데 벌써 안식년이라니!

첫해 6개월만에 일취월장(?) 제법 규모를 갖춘 교회는 순전히 규모상으로 말하자면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인 물은 아니지만, 젊은 층이 많아 이래저래 드낙거리는 유동인구 탓에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쉽게 위로의 근거를 찾자면 내실이 더해졌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우리 교회의 존재 의의를 분명하게 자각하는 '골수분자'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목회자로서는 조바심이 없을 수 없다. 일취월장하던 기세를 몰아붙였어야 했는데 어찌 그 기세를 타지 못했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또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도 들 때가 있다. 형편이 그러니, 내심 꿍꿍이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식년이 왔다고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먼저 나서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 회계연도 결산 월례회의에서 박 집사가 목회자 안식년 문제를 안건으로 제기한다. 그리고 내 의견을 묻는다.

그래서 실토를 해버렸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있지만 그 물이 솟아나는 물입니까? 어디서 끌어온 물이 돌고 돌잖아요? 딱 그 지경입니다." 제법 고상한 비유이지만 "나, 쉬고 싶어요", 이 말을 그렇게 뻔뻔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니! 그렇게 스스럼없이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형편은 되는 셈이니 나의 목회가 실패한 것만은 아닌 것일까?

하여간 그 이야기 끝에 대충 윤곽을 잡았다. 교회 형편과 내 형편을 감안해 적절하게 재충전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매월 한 주일씩 쉬는 방법 또는 일정기간 쉬는 방법 등 형편을 따라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덧붙이는 이야기들이 유쾌하다. "목사님 안 계시는 동안 스스로 예배 드리면서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모양을 갖추자." "그 동안 비방도 실컷 하며 해방감을 누려보자." 등등. 어디서 쳐 박혀 일정기간 연락두절하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내 이야기 끝에는 "지리산 골짜기도 좋아요." 등등 의견이 쏟아지기도 했다.

사실 교회만 두고 말하자면 뭐 한 일이 있다고 안식년을 챙기겠는가. 그러나 그간 바삐 달려오기만 한 시간들이 지속된 탓에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생각과 말을 내뱉을 것을 강요당해 온 터이니 늘 긴장의 연속이다. 집안에 쳐 박혀 있으면 팔자 좋게 집구석에 있는 줄로 알지만 싸돌아다니는 시간보다 더 심한 긴장 가운데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정을 헤아려 주는 교우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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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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