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삼스러운 경계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12-28 20:46
조회
3250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1번째 원고입니다(051228)


새삼스러운 경계심


누구의 이야기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각 연령대별로 느끼는 시간의 의미에 대한 비유가 그럴 듯하다. 어린 시절 시간은 바람 없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같다면, 청년 시절의 시간은 약한 바람에 떠가는 구름 같다고 했다. 빨리 내보내고 싶어도 떠나지 않는 시간, 또는 붙잡으면 붙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30이 넘고 40이 넘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다. 숨가쁘게 달려 보조를 맞췄다 싶으면 저만치 멀어져버린 시간이다. 50이 넘으면 이제 시간은 화살 같이 느껴진다고 한다.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시간은 이미 훌쩍 떠나버리고 만 듯한 느낌일 것이다.

나는 시간이 화살과 같이 느껴지는 그 경지를 아직 모른다. 50이 아직 안 넘었으니까. 하지만 어렴풋하게 감히 잡힐 듯하다. 한 해를 넘기고 새 해를 맞이할 때 '아니, 벌써!'라고 느끼기 시작한 지가 제법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제 50을 바라보는 지경에 와 있는 것 아닌가! 정말 시간이 무심히도 지나쳐간다는 느낌이 부쩍부쩍 든다. '언제나 청춘'이라고 외치지만 세월이 흘러가고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어찌 막을 것이며 어찌 속일 것인가?

40어간부터 이전에 겪지 못했던 몸의 변화들을 감지하는 데 익숙해졌다. 쉬이 피로감을 느끼는 증상, 피로할 때 눈이 가물가물해지는 증상, 빈도가 더해지는 몸살 증상 등등이다. 그러한 증상을 경험할 때마다 이제 특별한 건강관리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몸의 변화만이 아니다. 마음의 변화도 스스로 감지한다. 마음이라는 게 미묘한 것이어 어떤 변화가 나이 들어가는 증상인지 쉽게 예단하기 어렵지만 내가 느끼는 두드러진 증상 가운데 하나는 노여움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자기세계가 굳어져 가는 징후라는 점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증상인 듯하다. 스스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때는 낯선 것에 대한 수용성이 크지만,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할 때는 낯선 것을 이미 자기가 아는 지식으로 재단하려 든다. 노여움이라는 것도 자기기준에 마땅치 않을 때 솟구치는 감정이다. 흔히 완숙한 노년을 찬미하지만, 많은 경우 주변에서 경험하는 노년의 이미지는 유감스럽게도 '고집불통' '좁쌀탱이' '밴댕이 속' ... 등등으로 표현되는 완고함이 더 압도적이다. 배우려 하기보다는 가르치려 드는 것이 흔히 경험하는 노년의 일반적 태도에 가깝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니 당연히 그럴 법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의 세계가 그만큼 굳어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쳐졌는데도 새삼스레 노여움이 솟구치는 경험을 할 때마다 스스로 경계한다. '엇,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는 건가?' 물론 이런 경계심은 나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려는 발버둥이 아니다. 젊음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인생은 각 때마다 격이 있고 각기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의 경계심은 나이 들어가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그것이 곧 닫힌 마음, 닫힌 세계로 귀착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자기세계가 확고해질수록 다른 세계를 더욱 존중할 수 있는 너그러움 또는 완숙함을 바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경계심이다.  
16.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