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바탕 격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2:00
조회
351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스물한번 째 원고입니다(050630)


한바탕 격론


주일 오후에 한바탕 격론이 벌어졌다. 마지막 주일 오후 신도회별 모임 직후였다. 남신도회에서는 우리 교회는 머리를 너무 많이 쓰는 교회이니 몸을 많이 쓰는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그 논의가 끝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일 오후 예배가 없는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 오후에는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특별한 화젯거리가 되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풍경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 날은 마침 민족화해주일이었던 까닭에 한국전쟁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설교 역시 '끝나지 않은 전쟁'이었으니 무척 자연스러운 화젯거리였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특정한 주제가 화제가 될 경우에는 언제나 서로 다른 의견들이 오고가는 법이다. 그런데 이 날 이야기 분위기가 제법 뜨거워지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격렬한 논쟁으로 비화하였다. 쟁점은 한국전쟁이 내전이냐 아니면 외세 강대국의 대리전이냐 하는 것이었다. 저마다 그 타당성을 주장하는 동안 호흡이 거칠어지고 큰 소리까지 튀어나오는 지경이 되었다. 묘하게도 우리 교회에는 박씨 성을 가진 교우들이 많아 그야말로 박박 부딪히며 박 터지는 장면 같았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여신도회원들이 어린이 여름캠프 때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던 터였는데 눈이 휘둥그래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참 진풍경이었다. 목사의 설교도 너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데다 성경공부 또한 그러하니, 신도회에서 주관하는 다른 활동들은 머리보다는 몸을 많이 쓰는 방향으로 하자는 의견을 모은 직후에 터진 사태라 겸연쩍은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말 진풍경인 것은 점잖게 체면 차리고 교양있게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것에 익숙한 교회문화 풍토 안에서 그와 같은 격론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슨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서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입씨름을 한 것도 아니니 더더욱 진풍경인 셈이었다.

역시 어쩔 수 없이 머리만 너무 발달한 교회에서 벌어진 사태일까? 나에게 그 진풍경은 그렇게 볼썽사나운 풍경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감정 과잉의 교회들이 넘쳐나고 가슴 뜨거운 성도들이 많은 한국 교회 안에서 머리가 냉철한, 아니 머리가 뜨거운 교회가 끼어 있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종의 다양성으로 생명의 조화가 이뤄지는 이치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가? 물론 때로는 목사인지 의심받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 교우들의 요구를 다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나의 목회적 무능을 정당화하려는 말이 아니다. 나도 그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격론을 벌일 수도 있는 교회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은 권장할 만한 것 아닐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지경이 아니라면 나는 그 풍경을 진풍경이 아니라 예사로운 풍경으로 목격하고 싶다.

아, 그 날 실제로 박 터진 사람도 없으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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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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