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인간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58
조회
311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20번째 원고입니다(050609).


인간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인간은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거창한 물음이지만 목회를 하면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물론 나는 이미 깨달음에 이르렀으니 다른 사람을 교화하겠다는 차원에서 던지는 물음은 아니다. 스스로를 포함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과연 얼마만큼 변화에 이를 수 있을까 묻는 물음이다.

설교가 목회의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 만큼, 설교를 준비할 때는 항상 그 근본적 물음을 전제한다.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하는 만큼 내가 준비하는 설교가 내 지식의 전파에 머무르지 않기를 항상 바란다. 나를 감동시키는 깨달음도 없는 설교를 청중 앞에서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나를 초월하는 깨달음이 없다면 그 설교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런 깨달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설교를 더러 피할 수 없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 물음만큼은 언제나 저버릴 수 없다. 그러니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 항상 진통이고, 그 설교는 내 삶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불편함 때문에 동요하고 삶을 돌이켜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설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고, 신앙 역시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과정이라 나는 믿고 있다. 상처투성이의 삶으로 지친 이들을 두고 위로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목사의 무모한 믿음일까? 그러나, 이른바 세상이 주는 위로를 뛰어넘어 진정한 삶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길은 우리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이루는 데서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흔히 성장하는 교회의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 '미국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 하는 것 등등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기반을 흔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뒤흔듦으로써 회중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기반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승리하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은 욕망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신의 삶이 불편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세속적 욕망을 신앙으로 환치시킨 결과일 터이다. 놀랍게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는 인사 '승리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인사를 전하는 사람의 충정을 고맙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속으로 깊은 한숨부터 나온다.

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해, 수많은 업적을 이루기 위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내달리는 데서 기쁨을 찾는, 누군가를 제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달리는 삶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그 혼돈에서 교회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창문을 열면 쏟아지는 햇살을 보고, 길가에 꿋꿋하게 뿌리를 내리고 솟아오른 풀 한 포기를 보고, 같이 호흡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형제와 이웃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그것을 기쁨으로 아는 신앙은 우리들의 교회적 풍토에서는 요원한 것일까? 순진하고 무모한 목사는 오늘도 그 물음을 저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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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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