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상담을 원한다는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57
조회
3259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열아홉번째 원고입니다(050519).


상담을 원한다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방문이나 연락을 받고 진지하게 상담에 응하는 것도 목사의 특권일까? 교회에 있을 때 낯선 사람이 찾아오거나, 아니면 전화로 연락이 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겪는다. 물론 이 마켓팅 시대에 낯선 사람이 찾아오거나 연락해오는 경우는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다. 그러나 상품을 팔려는 마켓팅과 달리 꼭 목사를 겨냥해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상 그런 경우 그 '상담'의 결론은 거의 100% 도움, 아니 돈을 달라는 것이다.

그 유형이 갖가지다. 누가 봐도 초라하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찾아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목사님!"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는 사실 상담이 필요없다. 한끼 식사값이라도 쥐어주면 몇 번 머리를 조아리고 떠난다. 비교적 멀끔하고 건장한 사람들은 대개 사설이 길다. 여차저차해서 돈이 떨어졌으니 차비를 보태달라느니 식사비를 달라느니, 도움을 달라느니 말이 많다. 속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귀찮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대개 식사비 정도로 해결한다. 하지만 이런 부류들 가운데는 제법 귀찮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겨우 이거냐는 식으로 투정을 하는 이들도 있다. 표정과 말을 절제해야 하는 목사도 그럴 때는 별 수 없다. 멀쩡한 사람이 구걸하는 주제에 흥정까지 하려 드느냐고 호되게 몰아쳐 사태를 종결할 수밖에 없다.

고단수는 전화를 해오는 사람들이다. 사실 '상담'이라는 전용어를 쓰는 이들은 이 부류이다. 자신에 대해서도 비교적 그럴 듯하게 소개를 하고, 교회에 대해서도 다소간 알고 있다. 심지어는 나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굳이 약속시간을 잡아 상담을 하고자 하고, 때로는 '기도를 받고자' 한다고 한다. 정말 교회를 찾고 나를 찾는 사람들의 경우는 금방 안다. 교회 위치를 묻고 예배 시간을 묻는 경우라면 정말 교회를 찾는 경우다. 지금 우리 교회 식구들 가운데는 그런 경로를 통해 합류한 이들이 여럿이다. 그런데 상담을 원하고 기도를 원한다고 하는 경우, 내 경험상 유감스럽게도 100% 딴 목적이다.

큰 도둑질 못해먹고, 그래도 교회와 목사는 잘 속아준다는 것을 알면서 찾아오는 그들을 어찌 해야 할까? 속는 일이 언짢기는 하지만 없는 내 주머니 돈이 배부른 자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그런 대로 속아 줄 만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몇 푼 도움을 주는 것이 그 사람을 정말 돕는 것인가 하는 회의도 인다. 그러나 또 어쩌겠는가, 상담을 원한다는데! 혹시라도 그 사람이 정말 목사와 상담을 원했는데 거절당함으로써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속아줘야 할지 모르겠다. 탓해야 한다면 그렇게 찾아오는 이들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양산해내는 이 사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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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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