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산 따라 물 따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12
조회
439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네번째입니다.(040823)


산 따라 물 따라


'산 따라 물 따라 떠나는 여행', 우리 교회의 여름 수련회에 이름을 붙이자면 그렇다.

교회가 시작되고 처음 두 해는 가까운 수녀원(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에서 하룻밤을 묵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예배드리는 일정으로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라고 별다른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의 짐을 털고 여유자적할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수련회라 생각했다. 일상의 공간인 도심과는 떨어진 산 속에서 보내면서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고, 산보하고 싶을 때 산보하고, 때가 되면 밥해 먹고, 저녁 시간이면 옹기종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평소 드리는 예배와는 다른 수녀원에서의 예배를 드리는 방식이었다. 목사는 수련회라고 해서 신경 곤두세우고 프로그램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없어 좋고, 교우들은 매이지 않고 널널해서 좋은 수련회였다.

두 해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다들 욕심(?)이 과해졌다. 아마도 그만큼 만족했기에 과욕을 부리게 되었을 것이다. 다들 어디론가 더 멀리 떠나자고 했다. 거부할 까닭이 없었다. '산 따라 물 따라 떠나자! 교회가 크면 그런 여유도 만끽할 수 없다.' 그렇게 의기투합이 되자 목사로서 한 가지 욕심이 더 생겼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 '아름다운 교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였다. 그래서 여름 수련회 원칙이 정해졌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그 가까이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 그것이 우리 교회의 수련회가 되었다.

그렇게 처음 떠난 곳이 남도였다. 강진 해남 일대의 문화유적과 자연 풍광을 만끽하였다. 먼길이었지만 함께 길을 떠나는 일이 즐거웠다. 그리고 강진 남녘교회(임의진 목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주일예배에 동참하였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에서 내려다본 낙조,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바람과 같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남녘교회에 대한 기억은 모두에게 소중하게 남아 있다. 그 다음에 떠난 곳은 태백이었다.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껴 담요를 찾아야 했던 모순은 마치 태백 지역의 현실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풍광과는 대비되는 폐광촌의 현실이 아프게 느껴지는 곳, 그 곳에는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살 수 있는 꿈을 꾸는 태백 선린교회(원기준 목사)가 있었다.

두 해 내리 먼길을 달리고 났더니 이번에는 조금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했다. 먼길 달리느라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 밤이 아니라 오손도손 보내는 긴 밤이 그리워진 탓이었다. 이제 지금까지 수련회에서 누린 모든 것을 충족시켜야 하는 수련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니까 산 따라 물 따라 여행도 하고, 교회 탐방과 교류도 하고, 우리들의 사연도 나누는 모든 조건을 총족시켜야 하는 수련회였다. 그래서 낙착된 곳이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이었고, 멋진 교회당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는 진천교회(이창언 고은영 목사)였다. 월악산 맑은 물 송계계곡에서 천진난만하게 발에 물을 담그고 놀다 해질녘 교회를 찾아 들어가 긴 밤을 세우고, 다음날 주일예배를 함께 드림으로 그 기대는 충족되었다.

일상에 지친 이들이 교회에서마저 소위 '프로그램'에 매여 쪼들려야 하는 것일까? 일상의 강도보다 더 심한 강박 속에서 지내는 시간을 두고 '수련회'라 이름한다니?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우리의 수련회는 '꿩 먹고 알 먹고', 일거양득, 아니 일거다득의 기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노니는 듯하면서 교회간의 교류를 하는 기회로서 말이다. 내년에는 또 어디로 떠날 것인가 생각하면 벌써부터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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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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