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살다 보니 별 일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13
조회
374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다섯 번째 편입니다.(040902)


살다 보니 별 일이...


세상에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다. 얼마 전 주일 오후 우리 교회 '반주자 회의'가 열린단다. 반주자 회의를 해야 할 정도라면 성가대가 여럿이 있어 그 반주자들이 뭔가를 위해 모이는 것을 떠올리겠지만, 우리 교회는 아예 성가대가 없다. 그런데도 그런 '별 일'이 일어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반주를 맡고 있는 박 집사가 방학을 맞아 두 달 가까이 해외 출타 중이었다. 그 바람에, 김 선생이 임시 반주를 맡았다. 김 선생은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소시 때부터 교회 예배 반주에 매여 청춘을 다 바친 터라 '반주만은 제발!' 하는 심정으로 자유롭게 예배의 은혜를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반주자가 비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맡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임시로 반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전공자답게 일을 냈다. 예배 찬송을 국악찬송으로 몇 곡 바꾸자고 했다.

목사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국악찬송가>(향린국악찬송가발간위원회 간)를 구해놓고 우리 교회 예배에 도입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입례송과 결단송을 여기에서 선곡해 결정하고, 늘 부르는 주기도문송은 아예 새롭게 국악으로 작곡까지 했다. 예배 가운데 부르는 찬송의 절반이 국악곡으로 되었으니 국악반주자가 필요했다. 국악반주자로는 이견의 여지없이 틈틈이 장구를 익혀 온 것으로 알려진 정 집사 몫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예배 찬송 '개혁' 준비가 완료되자 출타했던 반주자 박 집사가 돌아 왔다. '천안살림교회 반주자 회의'는 그렇게 결성되었다. '개혁'의 성사를 위한 모임이었던 것이다.

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몇 달 동안 사람은 제법 모였지만 반주자가 없어 아슬아슬하게 찬송을 불렀던 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었다. 게다가 내가 목사로서 제일 자신 없는 것이 찬송인데, 반주자 복도 없어 몇 차례 반주자가 바뀌는 사이 반주 없이 예배를 드렸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정말 감개무량할 지경이었다. 그러니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는다'고 탄성을 자아냈던 것이다.

'별 일'은 그 뿐이 아니다. 정 집사는 어려서부터 교회 다녔어도 성가대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단다. 그런데 천안살림교회에서 당당하게 반주자로 등극하게 된 사실을 옛 친구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것이란다.

그렇게 놀라 자빠질 일이 계속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설교하는 가운데 늘 강조하는 이야기이지만, 믿음이란 그 의외성에 마음을 열고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또 살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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