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교회당과 절집이 나란히 있으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11
조회
3442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세번째 편입니다. 갑작스럽게 교회당을 옮기게 되면서 부딪힌 일화입니다. (040728)


교회당과 절집이 나란히 있으면


밑천 없이 시작한 교회개척이라 이사할 일도 많다. 4년 반 기간동안 벌써 두 번째 교회당 이사다. 미리 이전 계획이라도 세우고 좀더 그럴싸한 곳으로 이사를 한다면 번거로움에 아랑곳없이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 모두 임대장소에 문제가 생겨 부랴부랴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그때마다 제법 속이 상했다. 정말 '개척 자금'이란 단 한푼도 없이 무모하게 교회를 시작했던 목사로서 그 때마다 교우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손도손 모이고 새롭고 건강한 교회를 일군다는 믿음으로 함께 하는 교우들이 있어 든든하기는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가운데 황급히 새로운 교회당을 찾아야 하는 일은 속상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한 달 전 교회가 세 들어 있던 건물이 다른 주인에게 팔리는 바람에 새로운 교회당 후보지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첫 번째로 교회당을 이사해야 했을 때는 찬바람 쌩쌩 부는 한겨울이었는데, 이번에는 10년만에 찾아온 무더위 삼복중이었다. 저번 혹한기에 한 달 가까이 길거리를 헤매던 것에 비하면 이번에는 뜻밖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 자금(?)이 넉넉하다면 헤맬 까닭이 없지만, 가진 것은 없는데 입지와 공간 조건은 충족시켜야 하니 헤매고 헤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단단히 각오를 했건만, 단 이틀만에 찾아 전격적으로 계약을 했다. 접근하기 쉽고, 공간 활용도 좋고, 주변에 주차할 만한 여유공간도 있고, 게다가 어린이놀이터까지 바싹 붙어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로 윗층에 절집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한 우리 교회에는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집주인이 괜찮겠느냐고 확인하길래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재삼 확인해주었다. 오히려 위층 절집 아래층 교회당,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좋은 인연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은근히 흥미로운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절집 주인이 스님인지 보살님인지 알 수 없지만, 주일 공동식사 때면 모셔서 같이 식사도 나누고 종교간 화해의 미덕을 몸소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며칠 후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래층에 교회가 들어오면 절집이 나가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새 사람 들이면서 있는 사람 내쫓게 생겼으니 어찌해야 하느냐고 하소연이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냐,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냐 하는 자신감으로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본의 아니게 나를 다소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설득을 시작했다. 물론 요지는 신앙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서로를 배척해야 할 까닭이 없으니 '보기에 아름답게' 한집 살이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집 주인과 이야기 끝에, 처음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아득해지고 말았다. 도무지 마음을 열지를 않았다. '목사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겠다'면서도 자신이 당한 경험들이 많아 교회와는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양보하는 수밖에.

그 덕분에 일주일을 더 헤매고 난 후 결과적으로 훨씬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이번 일화는 내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절집 주인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피해의식이 공연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양보한 일이 그 피해의식의 껍데기 가운데 한 층이라도 벗기는 기회가 되었다면 좋겠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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