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여성 총리와 도덕성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0:08
조회
4738
<충남시사> 2002.8.12. 칼럼


여성 총리와 도덕성


최형묵(천안 살림교회 담임목사 / 본지 칼럼위원)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도덕성이 문제였다. 자식의 국적 문제와 재산 관리 의혹 등을 안고 있는 총리지명자가 공직자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결론이었다. 이번 계기는, 이전의 인물들이 어찌되었든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는 하나의 지표를 확립한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 표면의 이유가 전부였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만일 그 정도의 흠이 있는 남성이었다면 동일한 결론이 내려졌을까? 고위 공직에 있는 사람들, 국회의원들 가운데 그 정도의 흠이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는 역대 총리 가운데 그 정도의 문제가 없었던 인물이 얼마나 될까? 함부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손에 꼽기 쉽지 않을 것이다.    

총리보다 더 중책인 대통령 후보마저도 그보다 더 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절대로 도덕성의 기준만이 적용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의 공직사회가 한 순간에 그렇게 비약한 것이 아니라면 나의 판단이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여성계의 의견을 두려워해 쉽사리 여성총리의 문제성을 지적하는 주장하는 의견은 공론화될 수 없었지만, 사실상 인준의 가부를 결정한 것은 총리지명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다행이다. 나의 판단이 지나친 억측에 불과하다는 비난에 부딪혀보고싶다. 그러나 이미 어느 의원인가 속내를 발설한 것처럼 여성총리의 국정수행 능력을 의문시하는 남성들의 정서가 없다고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인준 부결은, 표면의 그 도덕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뿌리깊은 남성주의의 강고함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기회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봄 직하다.

물론 나는 이번 장상 총리지명자 인준 부결이 잘못된 사태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밝혔듯 그 엄정한 도덕성의 기준을 제시해줬다는 점에서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국정수행 능력이 있다면 개인적인 결함을 덮어둘 수도 있다는 관행에 동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 반대로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공직사회에서의 도덕성의 개가로만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한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보자는 뜻이다. 바로 그 현실과 더불어 공직사회에서의 도덕적 기준의 엄격성 문제를 같이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당사자로서야 재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고 억울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흠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내린 결정이라 하더라도 그 선택의 정당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바라는 것은 그 기준이 성별의 차이에 따라 굴절되지 않고, 정파의 차이에 따라 굴절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와 같은 기준이 굴절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지방 선거를 다 치른 마당이지만, 우리는 선출한 시민의 대표들에게는 얼마나 엄격하게 그 기준을 적용했는지 또한 되돌아볼 일이다. 한 차례의 투표행위로 그 판단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대표로서의 직능을 수행해가는 임기 내내 시민의 대표들 스스로 그 엄격한 도덕성의 기준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해야 한다. 당선 되고 나면 그만이라는 듯 '명박이짓'을 서슴없이 해댄다면 투명한 공직사회의 기강은 요원한 과제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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