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가족의 두 얼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0:42
조회
4582
* <천안문화신문> 2003.5. . 칼럼


가족의 두 얼굴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음주 단속에 걸렸을 때 위기를 모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 아주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이, 같은 식구끼리 왜 이래?"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 몰라 뵈었습니다." 하고, 무사 통과한단다. 그러나 이 묘안을 믿고, 마구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요즘은 그럴 리가 없으리라 믿고 싶지만, 지난 시절 그랬다는 것이다. 어쨌든, 공공연한 관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일도 한솥밥을 먹는 가족 사이에서는 그렇게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일화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가 결코 혈연적인 가족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또는 그 어떤 동질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자신들의 관계를 가족관계와 같이 여기는 것을 이상화한다. 같은 신앙을 추구하는 종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물론, 심지어는 사실상 철저하게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회사나 그 밖의 단체에서도 그와 같은 이상은 공유되고 있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이런 구호를 우리는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이 이상화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가족관계가 갖는 친밀함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어떤 관계보다도 친밀한 관계가 가족관계다. 사회의 여러 단체에서 저마다 가족을 이상화하는 것은 그 친밀함을 공유하자는 뜻이다. 친밀함은 '너'와 '나' 사이에 거리감 또는 장벽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허물이 없고 부담이 없는 사이가 가족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모두가 그 허물 없고 부담 없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일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가족관계가 그 친밀함의 이상으로 받들어질 때, 사람들은 그 가족관계의 또 다른 모습을 망각한다. 가족은 엄밀히 말해 순수하게 친밀한 관계 그 자체만은 결코 아니다. 또 다른 면에서 가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일 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잘못된 사회적 관계가 가족 안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 사회적 권력관계가 가족 안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권위적인 아버지가 자녀들을 소유물 다루듯이 하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어머니는 자녀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구한다. 평생 이 눈치 저 눈치에 시달려야 했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종 부리듯 한다. 그 모든 현상이 사회적 권력관계의 재현이다.

그런데 가족관계 안에서는 친밀함의 이상 때문에 그 현상의 본질이 은폐된다.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가정에서 사회의 잘못된 것을 배우고 익힌다. '나만을 위한 욕심'도 배우고, '힘으로 사람을 내리누르는 방법'도 배운다. 그리고 그것을 내면화해 사회에 나가서도 그렇게 살아간다. 친밀함의 이상과 함께 확장된 가족 이데올로기는 결국 사회에 친밀함 그 자체를 확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권력관계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수는 바로 그 가족관계 안에 무서운 독소가 자리잡고 있음을 간파했다. "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는 말과 함께, 구체적으로 "나는 '아들이 제 아버지를, 딸이 제 어머니를, 며느리가 제 시어머니를 거슬러서 갈라서게' 하러 왔다."고 한다. 예수가 괜한 가정분란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듯이 종교가 달라 갈등을 겪는 가족관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힘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문제시한 것이다. 서로 존중하며 섬기는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힘에 의한 침묵의 평화를 깨트리겠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굳이 가족관계를 들어 말한 것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가족관계 안에 그와 같은 권력관계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하는 그 관계에서부터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도둑이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자기만을 위한 욕심을 당연시하고 힘으로 사람을 내리 누르는 방법을 체득한 사람이 어떻게 살겠는가? 당연히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가정에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고 신뢰와 사랑을 체득한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역시 그렇게 살아간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며 우리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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