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정의로운 평화의 길 - 이사야 29:17~24[유튜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08-27 15:52
조회
1170
2023년 8월 2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정의로운 평화의 길
본문: 이사야 29:17~24



너무 지당한 말씀은 오히려 지나치기 쉽습니다. 늘 들어오던 이야기이고 그러기에 특별한 충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질지 모릅니다. 말씀을 그저 말로만 대하면 이 말씀의 생동감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당한 말씀이야말로 가장 심원한 지혜에서 비롯되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말씀은 특별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된 맥락, 그리고 다시 오늘의 역사적 맥락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쉽게 지나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교회에서 제대로 선포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더욱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의 희망을 선포하는 본문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며 먼저 그 의미를 헤아려봅니다.

말씀의 첫마디는 종말론적 선포로 시작됩니다. “레바논의 밀림이 기름진 밭으로 변하고, 그 기름진 밭이 다시 밀림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29:17). 땅의 격변, 자연의 격변을 이야기하되 꼭 부정적인 의미에서 파국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열매를 내는 수풀이든 곡식을 내는 기름진 밭이든 그것은 풍요로운 세계를 뜻합니다. 성서 곳곳에서 증언하듯, 순환하는 자연세계가 모든 생명에게 풍요를 보장하는 현실을 그린 것입니다.
그 놀라운 변화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이 밝히 드러나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29:18). 하나님의 진실이 사람들 가운데 환히 드러나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두루마리에 적힌 글은 이미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인간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진실이 환히 드러나고 이제껏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이 그 진실을 깨닫게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드러나는 사태는 인간사회의 놀라운 변화를 동반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사회의 놀라운 변화가 곧 하나님의 진실이 드러나는 사태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감응으로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그 변화가 무엇일까요? “천한 사람들이 주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29:19). 성서에서 언제나 강조되는 진실입니다. 성서가 선포하는 구원의 희망은 언제나 구체적인 인간사회의 변화를 동반합니다. 천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사건, 그것이 성서가 선포하는 구원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뜻합니다.
그것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게 될 때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날 것이다”(29:20). 이들이 누구일까요? “그들은 말 한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29:21). 바로 이들이 사라짐으로써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거룩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본문말씀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철저하게 관계적 차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관계의 형성입니다.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 변화는 공동체의 온전성을 이루는 길이 되며, 온전한 평화를 이루는 길이 됩니다. “이제 야곱이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의 얼굴은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고, 이제 그의 얼굴이 다시는 수모 때문에 창백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야곱이 자기의 자손 곧 그들 가운데서 내가 친히 만들어준 그 자손을 볼 때, 그들은 내 이름을 거룩하게 할 것이다”(29:22~23a).
출애굽기(20:7)에서 주기도문(마태 6:9)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혼자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그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말씀의 마지막은 그 의미를 다시 강조합니다. “야곱의 거룩한 분을 거룩하게 받들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혼미하던 사람이 총명해지고, 거스르던 사람이 교훈을 받을 것이다”(19:23b~24).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한 이 구원의 희망은 특별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다 왕조의 막바지에 그 통치자들은 강대국 아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시리아 편에 붙는 것이 국가의 안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는 아시리아 편에, 다시 이집트 편에 붙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는 이집트 편에 붙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그 동맹관계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말씀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바로 뒤에는 이집트와 맺은 조약의 무용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바로의 보호를 받아 피신하려 하고, 이집트의 그늘에 숨으려 하는구나. 바로의 보호가 오히려 너희에게 수치가 되고, 이집트의 그늘이 오히려 너희에게 치욕이 될 것이다. ... 너희는 이집트에게서 아무런 도움도 유익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치욕만을 얻을 것이다”(30:2~5).
이집트에 의존하고자 하는 통치자들에게 경고하는 말씀과 대비를 이루고 있는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러 주고 있습니다.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서의 일관된 관점입니다.
예언자의 몽상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요? 예언자 이사야는 본래 신분이 매우 유력한 사람입니다. 왕족이거나 아니면 유력한 귀족 가문의 일원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지체 높은 신분이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신학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당대의 국제정치 현실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선포한 메시지는 국제정치 현실에서의 어떤 정략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한 공동체의 온전성, 진정한 국가의 안보, 인간의 안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선포합니다. 포악한 자들과 비웃는 자, 그리고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사라지고, 그럼으로써 천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삶이 보장될 때 공동체의 온전성이 지켜질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가 이뤄질 때 진정한 국가안보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정의가 이뤄질 때 하나님의 이름이 온전히 거룩하다 여김을 받을 것이라 선포합니다. 그것은 성서가 일관되게 전하는 정의로운 평화(샬롬)의 이상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는 오늘 현실에서도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군사적 동맹과 그에 따른 군사훈련을 강화하여 진영대결을 부추기고, 상대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정책, 국제적 차원에서 정의 대신에 오직 힘의 우위만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평화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나라 안에서 정의를 이루고, 국제적 차원에서 정의를 이룸으로써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길을,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주하면서 동시에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릴 수 없다면, 오늘 말씀의 뜻을 곁으로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그 글을 읽어도 듣지 못하는 격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더더욱 심각한 것은 두루마리에 적혀 있어도 아예 덮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서가 누누이 반복하여 일관되게 전하고 있는 정의로운 평화의 길이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 어찌 되었습니까?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긴장과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잘 하는 일이라고 박수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와 같은 현실에서 오늘 말씀은 더더욱 절실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선포는 오늘도 변함없는 진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철저하게 정의로운 평화의 길을 따르라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역사 한복판에 구현하는 길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선포하는 진정한 구원의 희망,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의 뜻을 이루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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