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 미가서 6:8[김성윤 교우 / 유튜브]

작성자
살림교회
작성일
2023-09-17 16:57
조회
1120
2023년 9월 17일(일) 천안살림교회 남신도주일
제목: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
본문: 미가서 6:6~8
김성윤 교우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8)

안녕하십니까. 말씀 나누기 순서를 맡은 남선교회 회장 김성윤입니다. 매주일 목사님을 통해 귀한 말씀을 듣는 입장에서 전하는 입장이 되니 여러가지로 두렵고 떨리지만 준비한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 아모스에 이어서 이번 주는 소선지서 중의 하나인 미가서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미가는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2~3km 떨어진 시골 모레셋 출신의 평민 선지자로 시대적 배경으로는 남유다의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때 주전 8세기 후반때 활동했고, 동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로는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했던 아모스, 호세아 남유다에는 이사야와 미가가 있습니다. 일곱장으로 기록되어진 짧은 본문이지만 본문의 메시지는 상당히 명확합니다. 그는 무엇보다 당시의 통치자들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21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고 탐나는 밭과 집을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들었다”고 고발 합니다. 또한 32는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하며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내어 잡아 먹는다”고 기록합니다. 35”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이 없으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을 향해 “ 39~10정의를 미워하고 올바른 것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이며, 백성을 죽이고서 그 위에 시온을 세우고 죄악으로 터를 닦고서 그 위에 예루살렘을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이러한 지도층의 부패 뿐 아니라 6장1~5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죄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마치 재판장에서 싸우듯이 기록하며 책망하십니다. 미가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부패에 대한 혹독한 지적과 함께 동시에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결국 진노하시되 우리의 죄를 사하시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아모스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정의에 대하여 나누었 습니다. 히브리어에 우리말로 정의에 해당하는 두 단어는 지난 주에 들었던 하나님과의, 이웃과의, 넓혀서 모든 하나님께서 지은 창조물과의 관계 속에서의 정의를 말씀하시는 “쩨다카”가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재판, 다스림등의 사회의 제도적 정의를 말하는 “미슈파트”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가 무너진 현실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아는 구약 성서의 여러 선지자를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총 일곱장으로 기록된 짧은 예언서인 미가서를 읽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당시 정의가 사라진 이스라엘의 부패함이, 그 사회의 죄악됨이 작금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사회는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세금은 깍아주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마련된 복지정책은 하나 둘씩 “건전재정” 이라는 이름으로 없애려고 합니다. 정치는 어떠합니까 미가 선지자 당시에 정치권이 “앗시리아” 제국에 대항하여 신생제국 “바벨론”에, 전통적 강자였던 “애굽”에 줄대려 혈안이 되었던 것처럼 오직 강대국에 의지하며 미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므로 북한을, 중국을 러시아를 싸워 진멸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힘에 의한, 무력에 의한 평화가 절대 오래갈 수 없음을 성서의 여러 제국의 역사라 증명해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무력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고, 핵오염수를 전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바다에 방류해도, 우리 편은 과학적이라 주장하고 묵인을 강요합니다. 종교적으로는 어떠합니까? 기독교계는 경제적 고도성장기와 함께 성장해오던 교세가 꺽이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끊임없이 종북주의자 성소수자 이방인 등 공동의 적을 계속 만들며 혐오와 편견을 조장해 오지 않았습니까?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고 거룩한 하나님을 늘 말하지만 결국 드러난 것은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익 집단이라고 폄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아니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들 아시는 대로 작년에 저는 일본 교토교구와 대전노회의 교환 프로그램 일환으로 일본 교토 인근의 교회 여러 곳을 다녀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교회보다 열악한 환경들이었지만 작은 교회와 마을 사람들을 섬기며 지켜내고 계신 신실한 목회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특별히 엄혹한 시절에 이국 땅에서 학대와 차별 속에서 이름없이 사라졌던 우리 선조들의 흔적들을 보여주기 위해 안내판도 없는 장소들을 찾아내어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그 현장들을 지켜내고 유지 관리하시는 동포들 뿐 아니라 일본인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한국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소개 되었던 교토의 빈민촌 우토로 마을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토로 마을은 해방 후에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자위대의 공항 건설현장에 강제로 끌려왔던 재일 한국인들이 거류했던 임시 거류지(함바)가 미개발 상태로 남아 수도, 전기마저 공급되지 않고 여름이면 항상 홍수로 넘쳐났던 그 존재마저 감춰졌던 교토의 빈민촌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복구를 결심하고 땅을 매입하여 재일 교포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던 곳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땅 매입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그 사이 일본 우익들의 방화 사건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히려 방화사건으로 일본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문재인 정권 임기중에 가까스로 평화관이 들어서 지금은 재일동포,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의 협력 속에 양국간의 평화와 우호의 상징으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아직도 자신들은 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피해자로 항변하는 등 갈수록 우경화로 기울고 있는 일본 정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조상들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고, 한국민들에게 위로와 참회를 보내주는 교토교구와 일본의 양심적인 크리스챤들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많은 한국 교회가 일본 선교를 해야 한다고 열심을 내왔습니다. 일본의 선교는 한국보다 한참 앞서 1547년 스페인의 예수회 소속 수도사 하비에르의 선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집니다. 긴 역사에도 혹독한 박해로 선교는 큰 진전이 이루어 지지 않았고 지금에도 전 국민의 0.9%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가해졌던 혹독한 핍박과 관련한 내용이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기독교는 성장을 이루었으나 그 동인은 서로 달랐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엄혹한 시절에 대한 위로와 희망으로 급성장한 반면 일본은 국가주의의 팽창과 동시에 많은 양적 성장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당시에 일본 기독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1889년 종교의 자유화 이후에 일본은 국가주의의 태풍에 휩싸입니다. 러일, 청일 전쟁 당시에 일본 교회는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교회는 전쟁을 지지함으로 일본의 국가주의와 협조하였고 더불어 교세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와 연계하여 일본 기독교회는 국가의 지원으로 조선을 포함한 해외 전도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 기독교에서도 신사를 우상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우리 땅에서의 신사 참배 강요에 대하여 반대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전후 일본 기독교단은 전후 25년이 지난 1967년에서야 “ 제 2차 세계대전하에서의 일본 기독교단의 책임과 고백” 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합니다. 이 성명서에서 “세상의 빛이요 땅의 소금인 교회는 저 전쟁에 동조해서는 안되었다고 고백하고 조국이 죄를 범하였을 때 교회도 그 죄에 빠졌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기독교 外 타 종교, 사상계, 언론계 등 모든 분야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최초 고백이었고 각 교파의 회개운동에 불쏘시개가 되어 한일 양국 기독교간 교류의 근본 정신이 되었습니다. 또한 1995년 에는 “전후 50년을 맞는 일본 기독교인의 반성” 이라는 성명서에서 천황제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천황의 전쟁 책임을 담대하고 고백하고, 기독교단의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실현하자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현재의 일본 교회는 여전히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를 포함한 일본내 신도수는 약 110만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0.9%, 개신교인은 약 0.5%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지 않아 성도들의 노령화와 더불어 성직자도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신학교는 일본 선교에 뜻을 품은 한국인들이 없으면 운영이 어려운 상황 이라고 합니다. 또한 목회자 없는 교회와 열악한 교회 재정으로 사역 현장을 떠나는 성직자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장기간의 경제 침체와 더불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정치, 사상, 교육 분야에서 우경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신양 양심을 지키며 살아내기가 점점 더 불편한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반적 분위기 속에서도 일본 교회는 천황제에 대한 반대운동, 성소수자 문제, 여성 사제 안수, 오키나와 지역 차별 문제등 사회적/지역적 차별 문제등의 이슈를 제기해 왔고 최근 교단내에서는 성찬식의 참여 대상을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오히려 한국 기독교 교단 보다는 진보적 의제에 대하여 먼저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식은 숫자는 적을지라도 사회 속에서 불편을 감수하면서라도 신앙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신실함을 잃지 않아 보였습니다.

교회가 직면한 현실적 어려움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한국 교회도 성장을 멈춘지 오래이며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현실을 외면한채 극우적 이념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되, 성소수자와 이 땅에 온 이방인들에게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돌이켜 보면 한국 교회도 기독교인 대통령과 더불어 “서북청년회”란 이름으로 살인과 폭력을 조장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아직도 대부분의 교단에서 공식적 회개나 반성은 없습니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 항쟁, 여순 사건 등 수십만명이 학살당한 민족의 비참한 역사 이면에 감추어진 기독교의 과오에 대하여 아직까지 뚜렷한 조사조차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고도 성장기 이후에 삶에서의 복을 강조하며 잘 살기 운동에 동참한 결과 민주화 운동 이후에 사회적 이슈를 선도하지 못하여 거꾸로 추락하는 교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공동의 적을 만들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양국 기독교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오늘 미가서는 말씀합니다. “79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으니 이제 나는 주님의 분노가 가라앉기 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빛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 말합니다. 주님의 역사는 어떤 기적적인 역사를 통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그 흐름을 거스르며 참된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성령 충만한 소수의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짐을 봅니다. 이 나라 역사속에 참된 믿음의 길은 항상 험했고 소수였으며 사람들에게 매도되기 일 수였습니다.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제 개인적 이야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살림 교회를 출석한지 약 6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친구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를 참 열심히 다녔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청년의 때에는 새벽 성가대부터 저녁 예배까지 교회의 봉사를 도맡아 하며 넉다운되기도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은 한국사회의 성장기와 마찬가지로 교회조차도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재산의 형성, 자녀의 진학등 사람들이 선망하는 모든 일들이 개인의 신앙의 열매인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에게 청년시절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은 필립 얀시가 쓴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내가 고통당할 때 하나님 어디계셨습니까?“ 였습니다. 제목에서 아시듯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온 사람들에게 다가온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관한 책들입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온 저에게도 뜻대로 되지않고 이해되지 않은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며 수없이 울부짖으며 기도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기도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곤 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인식하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그 분이라기 보다 항상 저의 넋두리의 대상, 항상 듣기만하고 그 뜻을 한참 생각하여야 하는 연약하고 답답한 하나님 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인 일은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는 광나루 장신대 인근의 초대형 교회였습니다. 출석교인수가 만명이 넘었고 수십명의 목회자, 새벽예배와 수요예배, 목요 찬양, 금요 철야기도회로 늘 활기찬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가 원로목사님의 은퇴 이후에 교회에 목회자에 관련한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고 교인들은 반으로 갈라져 싸우며 심지어 예배 중에 호루라기를 불고, 기도하는 교인들을 폭행하기도 하였으며 담임 목사는 용역들의 도움 없이는 예배당에 출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원인은 예상하듯이 교회 안의 재산과 권력을 조속히 인도 받고 싶어하던 담임목사와 원로 목사간의 갈등이 발단이었습니다. 형제 자매와 같은 교인은 어느새 서로를 고발하고 폭력을 휘둘렀으며 같은 하늘아래 살수 없는 것처럼 서로를 증오하였습니다. 제가 짧은 인생속에서 겪어본 가장 서로서로를 증오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교회의 분쟁은 14년의 세월이 흘러 서로 갈라지고 교단을 떠나 분립한 후에 기존 성도들의 1/10만이 모인 상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대하여 올해 독서모임회에서 나누었던 책“하나님의 이름으로 혐오하지 말라”에서 저자인 유대인 랍비 조나단 섹스는 이를 “이타주의적인 악”으로 규정합니다.
이러한 집단적 “이타주의적 악”은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미국에서 벌어진 911사태를, 이슬람권에 남겨진 콥트 교도들과 선교사들에 대한 집단적 학살로, 미국 사회에서의 집단적 이슬람 포비아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대시하며 차별과 혐오를 당연시 하는 모습은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도 우리는 쉽게 접합니다.
서구에서는 수십년을 고민하며 그 원인은 무엇이고 과연 질병인지를 오랜기간 연구해온 성소수자 문제를 너무도 쉽게 그들은 범죄한 죄인이라고 한국 교회는 단정합니다. 유럽의 교회가 교세가 축소되어 쇠퇴했다고 단정하며 그 원인을 이슬람 난민이 원인이어 이 땅에서는 이교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동계 올림픽에서는 무슬림의 기도처소를 못짓게 하였고 제주도에 온 우리를 도왔던 예멘 난민들을 이슬람 세력이라고 반대했던 것도 기독교의 슬픈 모습이었습니다.
신앙으로 무장한 혐오와 편견은 신앙의 이름으로 어떤 일들도 주저하지 않으며 내세의 구원과 축복을 자신합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사람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은 언제든 이슬람과 서구사회에서 벌어지듯 “이타주의 적인 악”으로 무장하여 자기 편이 아닌 이들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순교를 가장한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 분쟁시 가장 많이 들었던 찬양은 “십자가 군병들아 주위해 일어나…..”였습니다.
살림 교회를 다니면서 어느새 저는 교회를 향한 손가락질에서 벗어난 것처럼 교회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교회도 있다고 주위에 자랑하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시에 교회를 향한 많은 질타 속에서 나는 아니라고 우리는 아니라고 교만해진 모습을 발견합니다. 또한 우리가 늘 고민하는 정의와 평화,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사랑을 정말로 회복하고 있는지 자문합니다.
정의와 평화, 생명 우리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속에 그 모든 일의 근본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정신없이 휘몰아 치는 사회 경제적 이슈와 개인 생활의 여러 일들 속에서도 잠잠히 내 심령속에 얕은 곳을 터치하며 만지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적어도 세상의 양심이 되고자 노력하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자 노력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소통속에 온 삶이 예배가 되어지고자 하는 정신입니다. 만인제사장으로 대변되는 그 정신은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온 삶으로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깨우쳤습니다.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 참회와 회개를 할 수 있다면 교회의 책임도 우리가 함께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의 부끄러움도 우리 몫이기에 부끄러움을 당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아파하며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미가서가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고 있는지,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 친밀하게 내 삶을 나누고 있는지 나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목사님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울고 웃으며 묵묵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시대의 불의 속에 담대히 말씀을 선포했던 미가와 같은 사명감으로 담대히 하루 하루 헤쳐 나아가기를 간구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이미 깨닫고 계시듯 하나님의 침묵도 은혜 였고 그렇게 연약해 보이는 하나님이 내게 은혜 였음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며 오늘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픔이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인내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신앙도 조금씩 자라가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국과 일본 교회의 아프고 답답한 현실도, 양국의 양심적인 크리스챤이 있음에도 변하지 않은 상황이 답답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정의와 평화의 길, 사랑의 관계를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오늘 나는 잘 믿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온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가 끊임없이 되물으며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기도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연약한 우리들을 세우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 앞에 두려움이 앞섭니다. 미가 선지자가 고발한 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경쟁으로 치달아 더불어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지 못하고 각자도생만을 추구하며 혐오와 편견을 조장할 때에 라도 좌절하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정의와 평화,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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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