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읽기 34] 빌레몬에 대한 인사 - 빌레몬서 1:1~7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8-27 21:52
조회
1334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8월 27일 / 최형묵 목사


제34강 빌레몬에 대한 인사 - 빌레몬서 1:1~7


0. 빌레몬서 읽기를 시작하며


빌레몬서는, 도망 노예인 오네시모를 다시 그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함께 전한 편지이다. 이 서신은, 그 수신자로 교회공동체가 배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일차적으로 개인이라는 점에서 다른 서신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전해진 편지가 성서 안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수신자로서 교회공동체가 배제되지 않고,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회람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서신은 내용은 도망한 노예를 돌려보내면서 그를 너그럽게 받아줄 것을 요청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음에 틀림없다. 노예제도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던 상황 가운데서 도망노예를 귀환시키면서 일종의 보증서를 써주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바울이 가르친 바와 같이 차별 없는 인간을 전제할 때(참조. 고후 5:17; 갈라 3:26~28), 노예제도는 거부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원칙이 분명하다고 해서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동방식이 곧바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노예제도 철폐를 위해 직접 싸우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명백히 사회적 제한을 인식하면서 주어진 역사적 조건 안에서 그 사회적 제한을 넘어서려는 행동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빌레몬서에서 바울이 제시한 해법은 그러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범례와 같았다.

그것은, 예컨대 오늘의 임노동관계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임노동관계 자체를 폐지해야겠지만, 주어진 역사적 조건 안에서 노동권을 보호하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빌레몬서에서 말하는 바울의 해법은 당시 노예제도에 대한 최종적인 해법이 되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노예제도 안에서의 법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진전된 대안으로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쓴 것이다. 그 지역은 아마도 에베소 지역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대략 53~55년 사이이다. 바울은 에베소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을 찾아온 오네시모를 개종시키고 그를 다시 그 주인의 집이 있던 골로새로(골로 4:9; 17) 돌려보내면서 이 편지를 썼다.    


1. 첫 머리의 인사 - 1:1~3


이 서신의 수신자가 일차적으로 빌레몬이라는 개인이지만, 그 수신인으로 교회공동체가 배제되지 않고, 따라서 서신은 공적 서신으로서 엄격한 격식을 갖추고 있다.

먼저 바울은 발신자를 밝힌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통상 ‘부름받은 사람’이라든가 ‘사도’라고 하는 것과 달리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서신의 진정성을 더욱 보다 강력하게 입증한다. 바울은 발신자로서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디모데가 서신의 공동저자라는 의미이기보다는 마치 그를 분신과 같이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수신자들이 그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바울은 수신자인 빌레몬을 동역자로 언급한다. 빌레몬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서 매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는 노예를 소유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유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자매로 호칭하고 있는 압비아는 아마도 빌레몬의 부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부인을 동시에 호명한 것은 그 부인의 중요성을 시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을 시사한다. 그 다음 언급되는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일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중요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바울 서신에서 ‘동역자’와 같은 의미로 통용되는 ‘전사’로 불린 것은 그의 역할의 주요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 모이는 교회를 수신자로 언급한다. 이 언급은 바울이 지금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단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2. 빌레몬에 대한 감사와 찬사 - 1:4~7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고자 하는 만큼, 먼저 빌레몬의 믿음과 덕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신실하며, 따라서 당연히 성도들을 사랑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것은 빌레몬이 복음을 전하는 데도 헌신적이었고, 성도들을 보살피는 데도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입에 발린 찬사가 아니라 빌레몬의 실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도망노예 오네시모에 대한 선처를 부탁할 수 있었다. 빌레몬의 신실함과 넉넉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 바울은 최대한의 찬사로 그 마음을 표현한다. “그대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다.” 여기서 ‘마음’은 자각의 능력, 특별히 사랑의 능력을 지닌 총체적 인간을 나타내는 말로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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