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41]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고린도전서 2:1~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0-22 22:29
조회
830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고린도전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10월 22일 / 최형묵 목사


제41강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 고린도전서 2:1~5



1.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만 전하기로 함 - 2:1~2


진정한 지혜로서 그리스도를 역설한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전할 때에 훌륭한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환기한다. 하나님의 증거 또는 신비를 전하는 것이 핵심으로, 그것을 포장하는 현란한 말이나 세상의 지혜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바울이 설득을 위한 일체의 수사학을 배제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하고자 하는 핵심으로서 하나님의 신비 내지는 증거 그 자체를 전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앞섰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이를 매우 단호하게 말한다. 그 분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바울에게 어찌 다른 지혜가 없었을까? 그 모든 지혜보다 우선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실, 그것이 자신의 지혜의 핵심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소용없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바울의 이러한 태도를 두고서는 여러 추측이 제기된다. 사도행전(17:16~34)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바울은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까닭에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말씀을 전파한 것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다시는 철학적 사변을 펼치지 않겠다는 것으로 종종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억측이다. 우선 아레오바고 설교가 실패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규모 인원은 아니지만 열매를 거둔 그 일을 실패로 단정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또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바울의 실패를 전하기 위해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바울 스스로도 아레오바고에서의 말씀 전파를 실패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오히려 바울은 스스로 결코 다른 지혜를 동원할 수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진실을 전하고자 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이는 태도로 임했다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계속 우리가 새겨야 할 바이다. 이미 앞선 내용(1:18)을 통해서 그것이 유대인이 추구하는 기적과도 다르고 그리스인이 추구하는 지혜와도 다른 진정한 지혜를 뜻하는 것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많은 것을 얻을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뿐인 세상의 길이 아니라,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삶을 기쁨을 주고 구원을 맛보게 해주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을 뜻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별히 고린도전서에는 역설의 진실이 매우 강력하게 피력되고 있다. 우리의 약함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완전해진다는 것, 부요한 자들이 가난해지리라는 것, 결혼한 사람들은 아내가 없는 자들처럼 하라는 것,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 같으나 실상은 모든 것을 가졌다는 것, 세상에서 쓸모없는 자들 같으나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것, 죽었으나 살아 있다는 것 등등 수없이 많은 역설의 진실이 강조된다. 그리스 철학에서는 연역, 귀납, 변증 외에 역설의 진실은 소크라테스 이외 철학자들에게는 배격되었지만, 그리스도교에 이르러서는 진실을 설파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등장하였다.      


2. 성령의 능력에 따른 말씀 전파 - 2:3~5


바울은 자신의 그 태도를 겉으로 보기에 언변이 뛰어나지 못한 자신의 약점(고후 10:1; 10)을 연상시키는 말로 재삼 강조한다. “내가 여러분에게로 갔을 때에, 나는 약하였고, 두려워하였고, 무척 떨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인정한 바와 같이 바울은 사람들을 마주 대하고 말할 때 언변이 뛰어난 인상 깊은 설교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의 글은 뛰어나지만 그의 말은 어눌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바울의 그런 약점을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단지 그 외적인 약점을 꼬집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전하는 진실이 갖는 힘, 이제껏 자신의 지혜로는 해명하기 어렵지만 정말 놀라운 진실이라는 것을 깨우친 사람의 근원적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사람의 경외감 같은 것이다.

바울은 재삼 말하기를 이른바 세상의 지혜로 그것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그것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성령의 능력이 보여주는 증거,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힘에 이끌리는 것을 뜻한다. 수행을 하는 사람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체험을 할 수도 있으며, 말(말이나 글)로써 어떤 진실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몰입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도 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이 직접 말을 할 때나 서신을 쓸 때, 바로 그와 같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에 이끌려 자신을 전적으로 개방하는 태도로 임해왔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설교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될 사람들이 인간의 지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현란하지만 알량한 언변과 수사에 의존하는 얄팍한 믿음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근거한 믿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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