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찰과 소통의 힘, 그리고 권력의 해체 - 김진호, 『반신학의 미소』 서평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19:37
조회
5004
<시민의 신문> 2002. 3. <서평>  


김진호, 『반신학의 미소』, 삼인, 2001


성찰과 소통의 힘, 그리고 권력의 해체

  

최형묵(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상임대표)


'반신학'! 매우 도발적인 이 말은 사실 뜬금 없이 튀어나온 낯선 개념은 아니다. 일찍이 민중신학자 죽재 서남동 선생이 썼던 말이다. 1970년대 '민중사건'의 충격으로 새롭게 펼쳐진 신학운동을 다들 민중신학으로 일컬었지만, 그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던 죽재 선생의 신조어였다. 그것은 민중신학과 동일어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민중신학이 여전히 '신학'의 한계 안에 있는 갇혀 있을 수 있다는 노파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죽재 선생은 '탈신학'이라는 개념과 더불어 이 '반신학'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종래의 신학과는 전혀 다른 논법을 제시했다.

'쇠똥에 미끄러진 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다들 알 만한 '에밀레 종' 이야기하며 '홍길동전' 등등을 거쳐 남궁옥분의 노래('다시 부르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죽재는 신학적 글쓰기의 파격을 보였다. 그것은 글쓰기의 파격일 뿐 아니라 신학적 사유의 파격이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사 입다와 이름없는 그의 딸'을 재고하는 대목에서 밝힌 것처럼 "경전에 찬탈된 민담의 부활과 복위"를 노리는 의도에서였다. 반신학 탈신학의 기획은, 교회의 영광을 위하여 독점된 경전과 그에 기반한 신학을 해방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서양-백인-남성'의 시각에서 전개된 서굴 주류 신학의 해체를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김진호의 『반신학의 미소』는 바로 그 신학의 전위를 새삼 환기시킨다. 그러나 김진호는 반신학이 함축하는 의도를 또 다른 한편으로 예각화한다. '서양'에 의해 주변화된 한국 민중의 눈으로 신학을 '다시 한다'는 데 초점이 있었던 '반신학'을, '서양' 대 '우리'라는 이분법의 해체 곧 탈중심화 테제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신학'은 '탈신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탈중심화의 테제로서의 탈신학의 기획이 노리는 것은 중심화된 권력이 만들어낸 모든 경계의 해체에 있다. 경계를 뛰어넘는 가로지르기의 자유분방함이 이 책에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교회와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며,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얻는 영감은 곧바로 성서를 재조명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성서의 세계를 오늘 당대의 세계에서 살아있는 언어로 재현하는 몫을 한다. 가로지르기의 분방함은 쉽사리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어려운, 그야말로 주변화된 변두리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어떤 의미에서든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이른바 소수자를 향한 시선이 강렬하다. 성서의 내용에 익숙한 사람들도 잘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없는 여인들을 복권시킨 다든지 이 시대의 동성애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는 시도들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중심화된 권력이 만들어낸 경계의 해체는 결국 그 권력 자체의 해체를 노린다. 김진호가 필사적으로 강변하는 '교회 해체'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예수사건의 유일한 계승자임을 자처해 왔던 교회는 여러 계승자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으로 끝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역사적 교회는 예수운동의 계승자라기보다는 거꾸로 예수의 권력해체적 실천을 뒤집어엎고 예수를 권력의 후견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철저하게 자기만의 아성에 갇혀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그 모든 기제들을 축복의 결과로 둔갑시켜 왔다. 교회는 자기 비판의 성찰 기제를 상실했다. '교회를 위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소통의 능력을 상실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반신학/탈신학은, 그러기에 교회와 세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의 능력을 회복시키려는 기획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기독교와 교회를 향한 오늘 시민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입지점을 같이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이 책이 단순한 '교회 때리기식' 저작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기 성찰과 소통의 힘을 강조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권력에의 욕망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비단 기독교와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제도적으로 고착화된 권력 기제들을 향한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은 내면화된 권력 지향성을 향한 성찰의 촉구이다. 이 책이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신학 서적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당대의 인문학적 성과의 하나로 주목받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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