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공기업, 민영화가 대안인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19:39
조회
5272
<충남시사> 2002. 3. 논설


공기업, 민영화가 대안인가?


최형묵(천안 살림교회 담임목사 / 본지 논설위원)  


철도노조의 파업이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필 파업이 시작된 바로 그날 서울행을 해야만 했다. 버스를 타고 움직여도 될 것을, 그 편의성 때문에 굳이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편이 드문 와중에도 겨우 차표를 구해 서울에 이르렀다. 약속 장소마저 하필 명동이었다. 철도노조원들이 한창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명동성당 근처였다. 인파를 헤치고 걷는 것마저 불편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도 기차를 이용했다. 달리 도리가 없는지라 시간을 허비해가며 막차를 타고 새벽녘에야 돌아왔다.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톡톡히 감수한 날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 특히 방송은 파업으로 인한 '국민불편'을 열을 올려 보도하였다. 여기에 덧 붙여 항상 따르는 보도목록이지만, 물류 이동의 어려움으로 수출입 비용 손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어떤 경우든 항상 노사분규 또는 파업이 일어나면 볼 수 있는 도식화된 보도방식이다. '불법' 분규에 대한 정부와 경제계의 대응논리를 덧붙이는 것도 항상 똑같다. 그 때마다 사안의 쟁점은 사라지고 만다. 언론에 비친 그 풍경에서는 왜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지 누구도 진지하게 물으려 하지 않는다. 국민은 불편을 호소할 뿐이며, 그 호소에 편승하여 '불법'을 마땅히 응징하는 것이 대안인 냥 기세를 올린다.

그러나 그 사태가 종결되면 문제가 과연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사태는, 일시적인 국민불편보다 훨씬 심각한 일상적인 국민불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본질로 하고 있다. IMF 위기와 더불어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공기업 민영화' 문제가 그 사태의 핵심이다. 노동조건의 개선과 구속 노동자의 처리 문제도 중요한 사인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소위 공기업 민영화 문제다. 정부의 입장은, 노동자나 국민들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그 핵심적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노조와의 협상 대상에서마저 제외해버리고 있다. 선거 국면을 앞두고 여야는 민영화 추진을 연기하는 것으로 미봉책을 찾았지만, 이 문제는 장차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공기업의 관료주의적 성격으로 인한 경영부실이 민영화 추진의 기본 배경이다. 그러나 과연 민영화가 공기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지 우리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민영화의 경우 현재 주요하게 거론되고 있는 철도나 한전 그리고 가스공사 등의 규모에 비추어 볼 때 필연적으로 인수 가능한 주체는 외국 기업이거나 재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익성 못지 않게 공익성의 중요성 때문에 국가가 기업을 직접 소유 경영하는 공기업의 타당성이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의 기업이 인수할 경우 부의 해외 유출도 문제려니와 국민의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공부문의 공익성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재벌의 인수 경우도 문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관료사회의 경직성보다 더 심각한 재벌경영의 폐해가 극복되지 않는 한 민영화로 인한 기대효과는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민영화의 주체가 외국 기업이든 국내 기업이든 공통적인 문제는, 수익성의 논리에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를 내맡겨버린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예측하더라도, 예컨대 철도의 경우 수익성 없는 노선은 철폐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 부담이 경감되리라는 기대도 별로 현실성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 정부의 재정 지출을 통한 지원은 이루어질 것이고, 민간 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일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민간기업의 독점으로 이뤄질 경영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임의적인 사용료 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국민은 세금은 세금대로 납부하고 높은 사용료는 사용료대로 지출하는 이중의 부담을 떠 안을 수밖에 없다.

지금 민영화의 주요대상으로 거론되는 한전이나 한국가스공사가 과연 매각 처분해야 할만큼 부실한지에 대한 의문도 만만치 않거니와, 철도의 경우도 사실은 잘못된 고속철도 사업으로 인한 부담이 큰 문제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문제는 정부의 실책에 있다. 그 실책의 부담을 불투명한 대안으로 다시 국민에게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다면 국민과 더불어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 무리한 민영화 추진만이 결코 대안일 수 없다. 오히려 공공부문의 공익성을 살리면서 활로를 타개할 수 있는 국민적 참여의 제도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국민은 단순한 시장의 소비자가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이다. 누구를 호구로 알고 하는 짓들인가.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