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국수'와 '국시'의 차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19:41
조회
6386
<천안아파트신문> 칼럼 2002. 1.  


'국수'와 '국시'의 차이


최형묵(천안 살림교회 담임목사)


'국수'와 '국시'의 차이를 아시는가?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 '밀가루'와 '밀가리'의 차이는 뭘까? '밀가루'는 '봉투'에 들어 있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들어 있다. '봉투'와 '봉다리'의 차이는 뭘까? '봉투'는 '혓바닥'으로 침을 발라 붙이고 '봉다리'는 '샛바닥'으로 침을 발라 붙인다. '혓바닥'과 '샛바닥'의 차이는 뭘까? '혓바닥'은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고 '샛바닥'은 '목구녕'으로 밥을 넘긴다. '목구멍'과 '목구녕'의 차이는 뭘까? '목구멍'은 '똥구멍'으로 통하고 '목구녕'은 '똥구녕'으로 통한다.

초면에 실없는 소리 좀 했다. 그러나 이 아까운 지면에 실없는 소리를 해서야 되겠는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같은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경험한다. 다르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옳으니 그르니 싸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옳으니 그르니 싸웠던 것이 결국 같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얼마나 허망한가? 그 사실을 꼬집는 우스갯소리이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그런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한 시각도 비슷하다. 정말 '문명의 충돌'이라도 되는 듯이 떠들고 있는 시각이 그렇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결인 냥 착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와 아랍 세계의 갈등 밑바탕에는 경제적 정치적 동기가 깔려 있다. 정확하게 말해 중동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야욕이 모든 중동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문명의 충돌이거나 종교간의 갈등이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피상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불순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시각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은폐한다. 또한 사태를 왜곡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편견을 뛰어넘고 보면 몰랐던 사실들이 많다. 예컨대 유대인과 아랍인은 모두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모시고 있는 형제들이다. 기독교인 역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모시고 있으니 넓게 보면 역시 한 형제다.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샬롬'(slm)과 아랍어의 '이슬람'(slm) 역시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원래 모음이 없었던 히브리어와 아랍어에서 두 단어는 똑같은 음가로 표기된다. '알라' 역시 또 다른 하나의 신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다. '알라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몇 가지 단편적인 예를 들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르침의 큰 뜻에서 보면 다른 것보다는 오히려 같은 것이 훨씬 많다.

물론 차이도 많다. 그러나 그 차이는 존중과 이해의 차원에서 바라볼 문제이지,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는 아니다. 어떤 현실이 그렇게 차이를 만들어냈는가를 이해하려 해야지, 종교가 달라 그렇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다. 하나는 '평화적인' 종교이고 하나는 '폭력적인' 종교여서 달라진 게 결코 아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한마디로 음모요 독선이다. 자기 기준만을 갖고 상대를 평가하고 배척해 버린 결과다.

그것은 마치 '국수'와 '국시'는 분명히 다른 것이고, '국수'야말로 진짜 음식이라 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모든 갈등은 바로 그 편견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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