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시대경륜 - 사무엘상 3:1~10[유튜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05-21 15:25
조회
1336
2023년 5월 21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하나님의 시대경륜
본문: 사무엘상 3:1~10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억되는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출애굽을 통해 형성된 자유민 공동체 역사의 출발점에 모세가 있다면 그 마지막에 사무엘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 사무엘이 공적인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게 되는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머니 한나의 서원에 따라 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진 사무엘이 비로소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아직 소년으로서 연로한 제사장 엘리를 거들고 있는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십니다. 엘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성전에서 잠들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을 드러내시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던 사무엘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제사장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는 방식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일어나 엘리에게 다가가서 부름에 응하였다고 답합니다. 엘리는 자신이 부르지 않았으니 자리에 가서 자라고 이릅니다.
두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엘리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차립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무엘에게 이릅니다.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그 말을 듣고 자리에 돌아와 다시 누웠을 때 하나님께서 그 곁에 서서 부르십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그 부름에 비로소 사무엘에 제대로 응답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전하시는 말씀으로 이어지지만,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무엘이 비로소 응답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무엘 이야기 전반이 그렇습니다만, 민담 기법으로 전해지고 있는 이 이야기가 함축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시대의 전환을 예고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시대가 끝나고 사무엘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시대가 끝나고 신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상징하는 새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요? 사실 그 답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역사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경륜가라고 해야 할까요? 사무엘은 두 시대가 교차하는 모순적 상황 가운데서, 역사의 격랑을 타고 묻히거나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물살을 좌우하는 존재로 우뚝 서 역할을 감당한 경륜가였습니다. 그가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것은 그 까닭이 있습니다.

사무엘의 비중은 그의 탄생 이야기에서 잘 나타납니다. 소원과 성취, 또는 약속과 성취의 전형적인 신명기 역사의 틀에서 서술된 사무엘의 탄생 이야기는 그의 존재에 대한 이스라엘 민중의 한 기억 방식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 드리는 어머니의 서원과 함께 성별된 존재로 태어납니다.
사무엘을 하느님께 맡기며 드리는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는 마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를 연상시킵니다. 한나의 기도에서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서 들어올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시어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재연됩니다. 이 한나의 기도는 마리아의 찬가의 원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동시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태어난 그 주인공의 몫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것은 사람들에게서 기억되고 있는 그 주인공의 실제 역할입니다. 사무엘은, 후대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성별되어 제사장 엘리의 손에서 자란 사무엘은 엘리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자 예언자이며 사사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됩니다. 사무엘은 매우 복합적인 지도자의 면모를 지녔습니다. 그 복합적인 지도자의 면모는 모세와 비견됩니다.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예언자로서 몫을 하였는가 하면 제사의 법규를 정한 사제로서 몫을 감당하였고, 동시에 백성의 최고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은 모세와 마찬가지로 당대의 모든 권위를 부여받은 지도자였습니다.
사무엘은 사실상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사사 역할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사사로서 그 몫을 제대로 감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삼상 8:1~3). 그 아들들은 자신들의 치부에만 급급했다고 성서는 전합니다. 그러니 사실상 사사로서 역할을 감당한 것은 사무엘에게서 끝난 셈입니다. 마지막 사사로서 사무엘은 매우 모순적인 존재였습니다. 마지막 사사로서 사무엘은 구시대를 대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족동맹 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연 인물로서 새 시대를 예비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족 동맹체의 전통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왕정 수립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은 모순적입니다.
그 시대 자체가 사무엘에게 그와 같은 모순적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그 시기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교체되는 시기였습니다. 그 전환기에 이스라엘은 이미 철기를 보유한 블레셋 세력과 대결해야 했습니다. 그 대결의 와중에 이스라엘이 생명처럼 여기는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삼상 5장 이하). 이스라엘의 위기는 전면화하였고, 블레셋 국가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왕권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제껏 배척해 왔던 블레셋과 같은 길을 따라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서는 이미 이스라엘 내부에 그 조짐이 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 이야기(사사 9장), 엘리의 아들들 이야기(삼상 2:22~36), 심지어 사무엘의 아들들 이야기(삼상 8:1~3),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왕정을 용인한 이후 사울 이야기(삼상 15장) 가운데 그 조짐이 나타나 있습니다. 평등주의 공동체의 이상을 저버리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일들이 지도층 가운데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사회 특권층이 누릴 만한 잉여산물이 생겼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은 이스라엘 사회의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사태들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왕정 요구는 단순히 군사적 위기에 대한 대응책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전면적 개편에 대한 요구였던 셈입니다.
사회의 전면적 개편을 시도하는 현실적 요구 앞에서, 자유민의 평등주의 공동체의 이상을 대변해 온 사무엘은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왕정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경고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삼상 8장). 왕정이 시행되면 아들들은 군대로 징발당하고 딸들 역시 노력동원 대상이 될 것이며, 꼬박꼬박 조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왕정 요구에 동의하면서도 이와 같은 경고를 빠트리지 않는 것은 사무엘이 처했던 난처한 상황을 말해줍니다.

한마디로 사무엘은, 그 자신이 옛 부족 동맹의 정신을 대변하면서도 새로운 왕정 시대의 예비를 주도한 모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모순적인 성격 자체가 사무엘이 권위를 지닌 지도자로 존속하게 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쩔 수 없이 현실론을 받아들였지만, 그 현실을 재는 근거는 여전히 옛 부족 동맹의 규범 곧 평등주의 정신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바로 그 정신에 기대어 권위 있는 지도자로서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사무엘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도, 철저한 이상주의자도 될 수 없는 어정쩡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 사무엘에 대한 평가는 전환기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평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격랑 가운데 있었던 사무엘은 노련한 경세가로서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모순되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시대의 교차가 만들어낸 것일 뿐, 그는 오히려 그 전환기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눈앞에 전개되는 새로운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지켜야 할 이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도 철저한 이상주의자도 아니었던 그는 오히려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이상주의자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기고 져야만 하는 시대의 모순 가운데서 그 모순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몫을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양극화의 시대에 통합적 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러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에게는 양측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기 쉽습니다. 한편에서는 ‘수구주의자’로 한편에서는 ‘급진주의자’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쪽저쪽에서 동시에 ‘회색분자’로 낙인찍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사무엘을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의 구원사관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신명기 역사관에서도 사무엘의 흠을 짚어내지는 않습니다. 그 아들들의 잘못은 지적할지언정 사무엘의 흠을 꼬집어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모순이 뒤엉킨 삶의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경륜을 읽어내는 성서의 역사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 삶의 현실은 어쩌면 매순간이 위기이며 전환기일 수 있습니다. 인간 삶의 현실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은 석기시대의 유물에도 나온다고 할 정도입니다. 어떤 시대나 구세대는 전적으로 구세대만은 아니며 신세대는 전적으로 신세대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교차의 연속입니다. 사무엘의 지혜는 지금 펼쳐지는 현실을 엄정하게 인식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지켜져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환기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경륜을 일깨운 데 있습니다. 현실을 떠난 자유가 아니라 현실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일깨운 것입니다.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것을 바꿔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안보 위기 앞에서 국가 발전의 논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국가 발전의 어두운 그늘을 염려하였던 사무엘의 안목은 그 지혜를 새삼 일깨워줍니다.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 늘 그 이면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그 지혜로 백성을 일깨웠기에 그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을 때, 발전의 논리로만 치닫던 왕정시대에도 그 폐해를 뛰어넘고자 끊임없이 평등의 이상을 고취하였던 예언자들의 몫이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성서는 사무엘의 역할을 통해 인간의 역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 말씀의 묵상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더불어 성서는 이 역사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목과 책임의식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오늘 사무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안목과 책임의식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 위에서 책임적인 존재로서 그 몫을 다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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