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외국어와 의사소통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02-03 11:27
조회
1885
* <주간기독교> 다림줄42번째 원고입니다(140203).


외국어와 의사소통


어쩌다 보니 일본을 자주 왕래하며 일본의 청중들 앞에 설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의 설교와 학교 및 집회에서의 강연 등 적지 않은 기회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일본어에 능통한가보다 싶겠지만 실은 아니다. 읽는 데 문제없고, 일상대화 조금 하는 정도다. 그러니  공적으로 일본의 청중들 앞에 설 때는 언제나 고마운 통역자가 동반해준다.


한 번은 통역자가, 설교나 강연 등 항상 원고를 준비하니 앞으로는 일본어로 직접 해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제안한 적이 있다. 그 제안이 솔깃했지만 아직은 아니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럴 듯한 방안이지만, 청중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면 그건 마땅치 않은 방안이었다. 언젠가 어떤 외국 분이 서툰 한국어로 하는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고 그 용기가 가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알아듣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 세워야 했던 피곤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한국말로 거침없이 말한다. 유능한 통역자가 있는데 뭘 걱정한단 말인가. 물론 앞으로 언젠가는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의 청중들 앞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오히려 모국어를 선용하고 있다.


대통령이 중국어로, 불어로 연설을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더니, 얼마 전에는 다보스에서 또 영어로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저 정치인으로서 외국을 방문하여 그 나라의 언어로 연설을 했다면 모를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외국어로 연설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일까? 개인적으로 아무리 외국어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은 자국어로 말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다. 그것은 호혜평등의 원칙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자존심의 문제이고 실리의 문제이다. 국민의 이해가 걸린 사안들에 대해 자신의 언어 말고 그 어떤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외국어로 말했다면 그 해당 외국어가 더 능숙하고 그래서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후문에 의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번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의 연설은 특정 국가의 청중을 상대로 하지 않고 여러 나라들의 정상을 상대로 한 만큼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영어 연설이 효과적이었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으나, 바로 앞에 앉은 일본의 수상도 통역기를 착용하고 그 연설을 청취했다. 뿐만 아니라 의장의 질문에는 엇나가는 답변을 한국어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외국어 연설이 원활한 의사소통과는 상관없다는 이야기이다. 그 내용을 보면 더 기가 막히다. 일련의 외국어 연설 내용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한껏 개방할 테니 맘껏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대내외 어느 편으로든 소통과는 상관이 없다. 자기만의 허영일 뿐이다.


대통령의 그 허영이 자랑거리로 통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 참담하다. 사람들이 허망한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자기만의 허영에 매인 대통령의 불통 행위는 계속될 것이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전체 1
  • 2014-02-04 15:45
    부끄러워서....아이구..
    rn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