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23] 만유의 빛(77~79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3-06 23:50
조회
958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3월 6일 / 최형묵 목사



제23강 만유의 빛(77~79절)


7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입니다. 내가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

7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왔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까? 여러분의 왕이나 권력자처럼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79 군중 속에 있던 한 여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을 낳은 자궁과 당신을 먹인 유방은 행복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참으로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임신하지 않은 자궁과 젖 먹이지 않은 유방이 행복하다고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77. (* 유사병행구: 에베소서 4:6)

* 나는 빛이다: 도마복음의 진수요 모든 종교적 가르침의 진수라 할 만한 구절.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스스로를 빛이라 하였음. 그러나 요한복음의 내용이 예수만이 빛이라는 배타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반면 도마복음에서 ‘빛인 나’는 그 전반적인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자아’, ‘우주적 자아’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나’(요한복음 8:58). 바로 그런 의미에서 도마복음의 진수요 동시에 모든 종교적 가르침의 진수가 될 수 있는 구절. ‘빛’은 때묻지 않은 순수 의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 주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오강남)으로, 여기서 예수의 자기이해는 사람의 자기이해와 유리되어 있지 않음(김용옥).

* 모든 것 위에 있고, 모든 것이며, 동시에 나가고 돌아오는 빛: 이 구절은 마치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말하는 에베소서 4:6을 연상시킴. 초월과 내재, 그리고 관계로 나타나는 빛의 속성.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 성ㆍ속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인식.  


78. (* 유사병행구: 마태 11:7~8; 누가: 7:24~26)

* 무엇을 보러 광야에: 다른 병행구들이 세례 요한과 관련된 문맥에 등장하는 반면 도마복음서에서는 그와 무관함. 그저 예수와 그 도반들의 정황을 말함. 여기서 광야는 실제 광야일 수도 있고 일상과 구별되는 차원으로서 광야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음. 아마도 일상의 삶과 구별되는 구도의 길에 나선 삶의 정황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일깨우는 구절. 그저 일상과 다른 어떤 것을 목도하는 것으로 족할지 아니면 정말로 바라는 뭔가를 찾아나선 것인지 반문. 정말로 바라는 뭔가가 화려한 옷을 입을 사람이라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 예수에게서, 또는 예수를 따르는 길을 그와 같이 생각했다면 착각하고 있다는 것. 화려한 옷이 아니라 거친 옷을 입고 있지만 내면의 빛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 * 이슬람 신비주의자 ‘수피’(‘털옷을 입은 사람들’).


79. (* 유사병행구: 누가 11:27~28; 누가 23:28~29//마태 24:19//마가 13:17//누가21:23)

* 당신을 낳은 자궁과 당신을 먹인 유방: 다른 병행구들에서는 한 여인의 말과 예수의 말이 서로 다른 문맥에 등장하고 있고 종말론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지만, 도마복음서에서는 같이 등장하고 있어 그 대비되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 아니라 종말론적 의미와도 다른 의미로 드러나고 있음. 우선 여기서 한 여인의 외침은 매우 인간적인 진실과 축복을 함축하고 있음. 위대한 사람을 낳고 기른 여인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의 발로라고 할 것. 예수 역시 그 의미를 굳이 거부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그러나 예수는 그보다 나아가 정말로 복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움. 여인의 외침이 혈연적이고 관습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그것을 뛰어넘어 말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움. 이 말씀은 여자의 역할을 ‘여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으로 선언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음. 새로운 주체의 선언. 독신 여성 수도자의 전통은 이러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 다음 제24강(3/13) 주제는 “세상을 아는 사람”(80절 이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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