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4] 전혀 다른 세상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0-18 21:24
조회
61
2023년 하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4
2023년 9월 20일~12월 20일 12주간(휴강주간 제외)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최형묵 목사

4강 (10/18) 전혀 다른 세상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눈으로 보지도 못했고, 귀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만져보지도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주겠습니다.”
18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의] 끝이 어떻게 임할 것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시작을 찾았습니까? 그래서 이제 끝을 찾는 것입니까?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시작에 서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는 끝을 알고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있기 전에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나의 제자가 되어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 이 돌들이 여러분을 섬길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낙원에 준비된 다섯 그루 나무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변하지 않고, 그 잎도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이를 깨닫는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입니다.”
20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하늘나라가 어떠할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겨자씨와 같아서, 모든 씨들 중 지극히 작지만, 준비된 땅에 떨어지면 나무가 되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쉼터가 될 것입니다.”
21 마리아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무엇과 같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 땅이 아닌 땅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땅 주인들이 와서 말하기를, ‘우리 땅을 되돌려 달라.’ 하니, 그 어린아이들은 땅 주인이 있는 데서 자기들의 옷을 벗고 땅을 주인에게 되돌려 줍니다. 제가 말합니다. 만약 집주인이 도둑이 올 것을 알면 그 주인은 도둑이 오기 전에 경계하여 그 도둑이 집에 들어와 소유물을 훔쳐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세상에 대해 경계하십시오. 힘 있게 준비하여 도둑이 여러분 있는 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예상하는 어려움이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깨닫는 이가 있도록 하십시오. 곡식이 익어 거두는 자가 손에 낫을 가지고 속히 임하여 이를 거둘 것입니다. 두 귀가 밝은 사람들은 들으십시오.”
22 예수께서 젖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젖먹는 아이들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이들과 같습니다.”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이들처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하고, 안을 바깥처럼, 바깥을 안처럼 하고, 높은 것을 낮은 것처럼 하고, 암수를 하나로 하여 수컷은 수컷 같지 않고, 암컷은 암컷 같지 않게 하고, 새로운 눈을 가지고, 새로운 손을 가지고, 새로운 발을 가지고, 새로운 모양을 가지게 되면, 여러분은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2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택하려는데, 천 명 중에서 한 명, 만 명 중에서 두 명입니다. 그들이 모두 홀로 설 것입니다.”
24 제자들이 예수[그분]께 말했습니다. “당신이 계신 곳을 저희에게 보여 주십시오. 저희가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두 귀 있는 이는 들으십시오. 깨달은 사람 속에는 빛이 있어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춥니다. 그 빛이 비추지 않기에 어둠이 깃드는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 Thomas O. Lambdin 외 번역본; <도올도마복음한글역주> 참조

17. (* 유사병행구: 이사 64:4; 고전 2:7~9; 마태 13:16~17; 누가 10:23~24 / 요일 1:1)
* 전대미문의 소식: 경험의 인식 지평을 완전히 벗어나는 차원을 말한다. 경험할 수 있는 어떤 대상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차원이다. “나는 나다”(출애 3:14). 종교의 궁극적 차원, 황홀경(怳惚境)을 일깨운다. 보이고 들어보고 만져보고 생각했던 것에 집착하는 종교는 그 근본에서 벗어나 있다. 노자(老子) 14장은 도(道)란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夷],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希], 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微]이라고 했다. 요한1서는 예수의 사랑 안에서 그 모든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8.
* 인식의 근본적 전환: 17절과 직접 연결된다. 끝에 관한 제자들의 물음은 일반적인 종말론적 인식, 곧 세상이 시작되었으니 그 끝이 장차 도래하리라는 종말론적 믿음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본래 그 의미는 삶의 종말에 관한 것이다. 예수는 “시작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끝을 찾느냐?”고 반문하면서 근본적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아직 삶도 다 알지 못했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는 공자의 반문과 동일한 발상이다. 죽음에 관한 물음을 삶에 관한 물음으로 전환한 것이다. 시간에 관한 두 가지 그리스적 개념, 곧 양적 시간으로서 ‘크로노스’(chronos: time: 정량적 시간)와 질적 시간으로서 ‘카이로스’(kairos: timing: 적기)의 대별되는 의미를 통해서도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시작은 궁극적 이치의 시원을 말한다. 따라서 그 시원을 알면 종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씀과 상통한다. 정량적 시간에 내맡겨진 존재가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주체적 존재의 가능성을 말한다.

19. (* 유사병행구: 요한 1:14, 9:58 / 창세 2:9)
* 있기 전에 있는 존재: 경험적 존재를 넘어서 그 경험적 존재를 배태한 근원적 시원을 말한다. 요한은 이를 예수에게 한정하고 있으나 도마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둔다. ‘없이 있음’(유영모), 어떤 대상과도 동일시될 수 없는 “나는 나”의 의미와 통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다. 있기 전에 있다는 것은 그 시원의 이치를 말한다.
* 낙원의 다섯 그루 나무: 이것들은 인간의 오관(色, 聲, 香, 味, 觸)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오미(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를 상징할 수도 있다(符都誌). 그 나무들이 언제나 시들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생동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뜻한다.

20. (* 유사병행구: 마태 13:31~32, 누가 13:18~19, 마가 4:30~32)
* 겨자씨: 이 대목의 구절들은 전반적으로 아귀가 잘 맞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을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다. 하나의 씨앗은 모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곧 처음과 끝을 동시에 안고 있다. 더욱이 여기서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가 큰 나무(사실은 초본이지만 새들이 깃들만큼 커지는 겨자)가 된다는 것은 질적인 변화의 과정을 극적으로 설명한다. 그 나무는 새들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것은 시원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끼치는 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장자(莊子)의 대붕(大鵬)을 연상시킨다.

21.
* 질문자 마리아: 성서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고 있는데, 여러 전승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여기 등장하는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놀다 옷을 벗고 떠나는 아이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 놀고 있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옷을 벗고 떠난다는 것은 본래의 자아, 원초적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인간이다. ‘귀천’(歸天), ‘귀일’(歸一), ‘해탈’(解脫) 등을 나타내는데,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을 떠올린다.
* 도둑을 경계하는 집 주인(* 유사병행구: 마태 24:43; 누가 12:39): 뜬금없이 이어지는 구절은 자구상으로 앞 이야기와 연결되기보다는 의미상으로 연결된다. 다른 복음서에서 도둑의 비유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도마복음에서는 앞의 내용 곧 빈손으로 ‘귀일’하는 삶에 대한 보호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깨달음의 삶은 언제나 위협을 당할 수 있기에 그에 대해 방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 곡식을 거둠: 이 문구 역시 의미상으로 연결하여 이해하면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곡식을 거두는 행위는 깨달음의 삶을 지켜나가는 구체적인 실천을 함축한다.

22. (* 유사병행구: 마가 10:14; 마태 19:14; 누가 18:16)
* 젖먹는 아이들: 다른 복음서의 병행구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내용이다. 다른 복음서는 뛰어노는 아이들을 말하고 있는 반면 도마복음은 젖먹이 아이를 말하고 있다. 뛰노는 아이들에게서는 순진무구함, 겸손 등과 같은 도덕적 교훈의 의미가 강조된 반면 젖먹이 아이에게서는 도덕적 분별 이전의 원초적 인간의 상태가 강조된다. 분별 이전의 원초적 합일의 상태, 곧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를 말한다.
* 대극의 지양(둘을 하나로...): 젖먹이 아이의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바로 이어지는 구절의 해설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선악, 미추, 고저, 장단 등 모든 대극의 지양 상태를 말한다. 켄 윌버(Ken Willber)는 인간 의식의 발달과정을 주객미분-주객이분-주객초월로 나눠 이해한다. 실제 젖먹이 어린아이의 상태는 주객미분의 상태로 볼 수 있으나, 하나의 비유로서 젖먹이 어린아이의 상태는 주객초월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마복음서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초점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진정한 인간을 말한다.

23. (* 유사병행구: 마태 7:13, 22:14, 누가 13:24 / 신명 32:30, 잠언 7:28~29)
* 깨달음의 어려움: 앞선 내용의 결구와 같다. 비밀의 말씀을 깨닫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다. 홀로 선다는 것은 역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의미이다. 아니면 앞의 내용들과 연계하여 ‘하나된 자’라는 의미로 새길 수도 있을까? 종교의 심층차원에 도달하는 사람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종교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차원을 포기해 버린다면 그것이 참 종교가 될 수 있을까? 오늘 현실에서 다시 깊이 물어야 하는 물음이다.

24. (* 유사병행구: 요한 14:1~6, 마태 5:14~16)
* 내 안의 빛: 다른 복음서, 특히 요한복음서와 결정적으로 대비되는 도마복음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먼저 길을 언급하고 그 길을 모르는 도마에게 자신이 바로 길이라고 말하였으나, 도마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길을 묻는 것으로 되어 있고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 깨달은 사람 누구에게나 빛이 있고 그 빛이 온 세상을 밝힌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 빛이 있으면 온 세상이 환히 밝혀지는데 특정한 길이 따로 있겠느냐는 이야기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 빛이 비추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어둠이 깃들고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역설한다. 한편 이와 같은 입장은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도 등장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5강(10/25) 네 형제를 네 영혼과 같이 사랑하라 – 25~33절, 다음 주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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