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7] 나그네가 되어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1-08 17:29
조회
100
2023년 하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7
2023년 9월 20일~12월 20일 12주간(휴강주간 제외)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최형묵 목사

7강 (11/8) 나그네가 되어라

4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가 되십시오.”
43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일을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을 듣고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유대인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사랑하면서 그 열매를 싫어하든가, 열매를 사랑하면서 그 나무는 싫어합니다.”
4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모독하는 사람도 용서를 받을 수 있고, 아들을 모독하는 사람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45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고,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좋은 과일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은 그의 곳간에서 좋은 것을 가져오지만 나쁜 사람은 그 마음속에 있는 그의 곳간에서 나쁜 것을 가져옵니다. 그 마음에 가득 넘치는 것에서 나쁜 것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4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누구 앞에서도 고개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되면 그 나라를 알게 되고, 또 요한보다 더욱 위대하게 됩니다.”
4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한꺼번에 두 마리 말을 탈 수 없고, 두 개의 활을 당길 수 없습니다.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데, 한 주인을 존경하면 다른 주인을 경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오래 익은 포도주를 마시고 곧바로 새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새 포도주는 헌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새 포도주가 헌 가죽부대를 터뜨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익은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포도주가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낡은 천 조각으로 새 옷을 깁지 않습니다. 그것이 새 옷을 찢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서로 화목하고, 그들이 산을 향해 ‘여기에서 옮겨가라!’라고 하면 그것이 옮겨갈 것입니다.”
4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행복합니다.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 Thomas O. Lambdin 외 번역본; <도올도마복음한글역주> 참조

42. (* 유사병행구: 누가 9:57~10:16)
* 나그네가 되어라: 도마복음에만 나오는 가장 짧은 구절로, 도마복음의 성격을 한마디로 나타내주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이요 특히 성서에서 일관되는 가르침이다. 도상의 존재로서 인간, ‘탈향(脫向)’의 인간을 말한다(안병무). 방랑의 카리스마들로서 예수운동에 동참한 이들의 실제 모습이기도 하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집착을 삶의 절대적인 안정의 근거로 삼는 삶의 법칙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43.
* 당신은 누구십니까?: 도마복음에만 나온다. 다른 복음서에도 예수의 정체와 관련된 물음의 상황이 등장하기는 한다. 특히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정체 내지는 권위에 관한 물음이 제기될 경우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예수’를 강조한다(요 8:19, 8:25~26, 14:8~11). 그러나 여기서는 어떤 외적 권위의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곧바로 스스로의 말로 그 정체를 깨달아 알도록 촉구하면서, 그러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고 통탄한다. 제자들이 마치 유대인들과 같다고 했는데, 이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말로써 곧 그 사람됨을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통 유대인과는 구별되는 ‘갈릴리 사람들’로서의 자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44. (* 유사병행구: 마태 12:31~32, 마가 3:28~29, 누가 12:10)
* 용서받지 못할 성령에 대한 모독: 다른 복음서들에도 유사병행구가 등장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삼위일체론’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삼위가 등장하되, 그 사이에는 단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에 대한 모독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일까? ‘아버지’와 ‘아들’은 대상화될 수 있는 존재로서, 그 대상화는 오해와 곡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반면에 성령은 대상화가 불가능한 내면의 진실과 통하는 차원으로 그야말로 영적 차원을 말한다. 성령에 대한 모독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진실에 대한 기만을 뜻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자신의 눈앞에 대상화되어 있는 존재(아들) 또는 머리 속으로 대상화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존재(근본적으로 대상화 가능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이미지로 그리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곡해는 있을 수 있지만(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그럴 수 있다 쳐도), 내면으로부터 울려오는 진실의 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그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45. (* 유사병행구: 마태 7:16~20, 12:33~35, 누가 6:43~45)
* 가시나무에서 포도가 날 수 없고...: 당시의 속담을 들어 깨우침을 주고 있다. ‘마음속에 있는 곳간’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내면에 축적된 것이 외면으로 표출되는 것을 말한다. 한 측면에서 인간관계(사회)의 관행 내지는 구조적 법칙성을 말할 수 있지만, 결국 인간사회의 모든 일들은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근원적으로 인간 내면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은 선택의 가능성을 말한다. 곳간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그것은 일련의 축적과정을 뜻한다. 단박의 깨달음이냐[頓] 점진적인 수련이냐[漸] 할 때 본문은 후자에 가깝다.

46. (* 유사병행구: 마태 11:11, 누가 7:28)
* 여자가 낳은 사람 / 어린아이: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을 경배하라’는 15절의 의문을 풀어주는 말씀이다. 이 본문에서는 ‘여자가 낳은 사람’과 ‘어린아이’가 역접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통념으로 봐서 어린아이야말로 여자가 낳은 것임에 틀림없는데, 이렇게 역접의 관계로 말하고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세례 요한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존재를 결코 폄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존재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다. 이는 도마복음서가 누누이 강조하는 모티프이다. 원초적 합일의 상태로서 인간을 말한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것과 대비되는 의미로 불과 성령으로 주는 세례를 강조한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와는 질적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도마복음서의 이 구절은 그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대비되는 초점은 무엇일까? 율법 앞에서 의인이었던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근본적 거듭남의 경지, 곧 내면적 각성에 이르는 사람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47. (* 유사병행구: 마태 6:24, 누가 16:13 // 누가 5:39, 마가 2:22, 마태 9:17, 누가 5:37~38)
* 양립할 수 없는 경우: 여러 가지 속담을 총동원하여 깨우침을 주고 있다. 말을 타는 이야기는 도마복음에만 나오고, 두 주인에 관한 이야기는 돈과 하나님에 관한 교훈으로 다른 복음서에 나오고, 포도주와 가죽부대 이야기, 그리고 천 조각과 옷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서 낡은 것에 대해 새것을 강조하는 문맥에 나온다. 도마복음은 꼭 새것과 낡은 것의 대비를 강조하는 의미로서보다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경우를 강조하는 의미로 여러 가지 속담이 활용하고 있다. 말미에 천 조각과 옷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복음서와 달리 낡은 천 조각으로 새옷을 기움으로써 새 옷을 버리지 말라고 함으로써 낡은 것과 새 것을 대비하고 있다.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 삶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삶의 질적 차이를 말한다.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누가 9:62)

48. (* 유사병행구: 마태 18:19 // 마태 21:21, 마가 11:23)
*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 화목하면...: 각기 초점이 다른 병행구들이 다른 복음서에 나온다. 마태복음은 두 사람의 합심을 강조하고, 마태복음의 또 다른 구절과 마가복음의 병행구는 믿음이 일으키는 기적을 강조한다. 마태가 두 사람의 합심을 말한 것은 공동체적 결속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반면에 도마가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 화목하는 경우를 말한 것은 공동체적 결속보다는 개별 인간의 내면의 일치를 강조하는 뜻을 지닌다. 도마복음서에서 ‘집’은 우리 몸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71, 78, 103절 등). 원초적 융합, ‘제나’와 ‘얼나’의 합일을 말한다. 성령을 모독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산을 움직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는 차원을 말한다(2절). 이를 초자연적 기적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도마복음의 뜻을 거스른다.

49.
*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사람: 홀로 된다는 것은 도마복음에서 누차 반복하고 있는 중요한 모티프(4, 6, 23, 75)로서, ‘신 앞에 선 단독자’를 의미한다. 택함을 받는다는 것 역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서(8, 23, 50), 예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희소성을 뜻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온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사람이 나라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왔고 [하나님] 나라로 되돌아갈 본성을 지닌 인간을 말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성선설(性善說)에 가깝다. 그러나 그 본성을 구현하는 사람은 드물다.


* 8강(11/29)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 50절 이하, 2주 후에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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