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9] 있을 때 잘 해야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2-06 21:29
조회
127
2023년 하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09
2023년 9월 20일~12월 20일 11주간(휴강주간 제외)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최형묵 목사

9강 (12/6) 있을 때 잘 해야 – 59절 이하


5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 살아계신 이를 주목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살아계신 이를 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60 예수께서 한 사마리아인이 양을 유대로 끌고 가는 것을 보시고[예수께서 유대지방으로 가실 때 양을 들고 가는 사마리아 사람을 보게 되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 사람이 왜 양을 [묶어서/메고] 갑니까?”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잡아서 먹으려는 것입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양이 살아 있을 때는 그가 그것을 먹지 못하지만, 양을 죽여 시체가 된 다음에는 먹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쉴 곳을 찾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도 시체가 되어 먹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6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 것입니다.” 살로메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특별한 이로부터 오신 것처럼 내 자리에 앉아 내 상에서 드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완전한 분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받기까지 했습니다.” 살로메가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말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갈라진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합니다.”
62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비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밝힙니다. 여러분의 오른손이 하는 것을 여러분의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6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나는 돈을 들여 씨를 뿌리고 거두고 심고, 내 소산물로 창고를 가득하게 하겠다. 그러면 내게는 모자랄 것이 없겠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계획이 있었지만 그 농부는 그 날 밤 죽고 말았습니다. 귀 있는 이들은 들으십시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 Thomas O. Lambdin 외 번역본; <도올도마복음한글역주> 참조


59.
* 삶과 죽음: 진정한 삶에 대한 응시를 일깨우는 말씀이다. 여기서 ‘살아계신 이’는 예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도마복음의 첫 구절에서는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이라고 했다. 이에 상응하여 지금 그분을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살아 있다고 말한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삶을 삶답게 사는 예수를 응시할 수 있는 사람, 곧 그 삶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역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계신 이를 응시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눈을 뗄 때 죽음에 이른다. 그것은 육체적 생명의 종말로서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이 말씀에는 죽음 이후의 부활 또는 죽음 이후의 천당 관념 같은 것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참 삶에 대한 직시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60.
* 죽으면 음식이 되는 양: 도마복음서에서는 이례적으로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는 구절이다. 원문이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애매한 대목도 있다. 원문의 문맥에서 유대로 가는 주체는 예수일 수도 있고(도올 역) 사마리아인일 수도 있는데(오강남 역), 유대의 정통성과는 먼 사마리아인이 유대를 향한다는 것보다는 예수가 유대를 향하고 있는 정황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듯하다. 물론 본문 의미상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 구절은 분위기상 심오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복잡할 것 없다. 양이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그것을 먹는 것처럼, 사람 또한 죽으면 누군가에게 먹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식인의 관습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사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이다.
* 참 삶의 조건으로서 안식: 산송장과도 같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쉴 곳을 찾으라고 일깨운다. ‘쉼’은 구원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쉴 자리는 곧 ‘아버지의 나라’와 동일시된다. 그 안식은 삶의 중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된 삶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50절에서 빛의 자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움직임’과 ‘쉼’, 곧 ‘동(動)’과 ‘정(靜)’이라고 한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58절에서 삶의 한 측면으로서 아픔, 곧 수고로움을 말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그 삶의 완성으로서 안식을 말하고 있다. 안식이 구원의 이상으로 제시되는 것은 안식 없이 분주한 삶이 곧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 안식은 죽은 다음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누려야 한다.

61. (* 유사병행구: 마태 24:40~42, 누가 17:34~35)
* 한 침상에 오른 두 사람: 도마복음 전반적인 대의에 비춰 어느 정도 그 뜻을 가늠할 수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들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구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자리에 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는다는 이야기는 마태와 누가의 병행구와 비슷하다. 하지만 역시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서가 바탕에 깔고 있는 종말론적 전제는 없다. 여기서 삶과 죽음은 앞 구절들에서 말한 것과 연속성을 가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두 사람이 개별적 존재들을 말하는 것인지(오강남) 한 사람 가운데 있는 두 자아를 말하는 것인지(도올)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쉼’, 곧 ‘안식’의 순간에 두 사람의 운명이 교차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에서, 그리고 후반부에서 분열된 자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본래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를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 완전한 사람 / 하나된 사람: 살로메는 마가복음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15:40)과 부활(16:1)을 목격한 여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른 복음서들이 여성들을 ‘제자’의 반열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반해 도마복음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자’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와 살로메가 만나 이야기하는 상황은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한 요소이다. 예수가 살로메의 ‘자리’ 곧 ‘침상’에 오르고 ‘식탁’을 함께 나누는 장면은 낯선 외간 남자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일이 너무나 태연스럽게 이뤄진 상황에 대한 살로메의 당황스러움과 경이감이 배어 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문한다. 합일의 경지에 대한 경외감이다. 살로메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 또한 그 상황과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완전한 분으로부터 온 사람’이라는 답이 그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분열되지 않은 합일의 경지를 말한다. 그 대목에서 살로메는 ‘제자’임을 고백한다. 스스로 합일을 깨달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완전한 분으로부터 뭔가를 받았다는 것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지닌다. 그 받은 것이 ‘제자들’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이야기 끝에 살로메가 제자임을 고백하자 당신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여기고, 예수는 완전한 사람은 빛으로 가득하지만 분열된 사람은 어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말한다. 한 인간이 온전한 전체로 존재하면 그 내면에 빛이 가득하지만 분열된 상태로 존재하면 그 내면에 어둠이 가득해진다는 것이다. 송창식의 <당신은 누구시길래>를 연상하면 더욱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62. (* 유사병행구: 마태 4: 11, 13:11, 누가 8:10)
* 비밀: 다른 복음서들의 병행구는 선행에 관한 도덕적 교훈과 관련이 있으나 도마복음서는 말씀을 깨닫는 차원을 말하고 있다.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것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로메에게도 그 뜻을 알아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에 말한다고 하였다. 심오한 진리에 대한 승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혜안과 인격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마복음은 가르침의 공개성과 제한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이 대목은 그 제한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삶의 실상이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

63. (* 유사병행구: 누가 12:16~21)
* 부의 축적의 허망함: 지금 쭉 이어지는 구절의 맥락에서 볼 때 예수의 비밀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의 표본으로서 부자를 말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누가복음의 병행구에 비해 훨씬 간결한 형태를 띠고 있는 이 본문은 훨씬 일반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동시에 간명한 의미를 담고 있다. 누가복음의 병행구는 이기적인 부자가 하나님의 징벌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도마복음의 이 구절은 그저 부자로서는 당연한 일상적 과정으로서 투자와 수확을 구상하고 있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악한 부자를 질책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삶에 매여 물질적 풍요로움만을 추구하는 삶 자체의 한계를 말하는 이야기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낸다면 허망하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말씀이 언제나 비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64, 65절). 문맥상 63절과 더불어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으나, 일정한 서사 형식을 갖춘 비유 양식을 취하고 있어서 다른 복음서들과 대비하며 헤아려 보아야 할 점이 많기에 다음 시간으로 돌린다.


* 10강(12/13) 너희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 64~70, 다음 주에 계속하며
11강(12/20) 나는 빛이다 – 71~81로 이번 학기 일단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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