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10] 너희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2-13 21:31
조회
95
023년 하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10
2023년 9월 20일~12월 20일 11주간(휴강주간 제외)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최형묵 목사

10강 (12/13) 너희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64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손님들을 위해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잔치가 준비되자 주인은 종을 보내 손님들을 초청했습니다. 종은 처음 사람에게 가서 ‘제 주인이 손님을 초청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손님이 말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 몇이 내게 빚을 졌는데, 그들이 오늘 저녁에 오기로 하여 그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기에 가봐야 하네. 부디 저녁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실례를 용서하게.’ 종은 다른 손님에게 가서 ‘제 주인이 손님을 초청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손님은 말했습니다. ‘내가 집을 사서 하루 종일 나가 있기에 시간이 없네.’ 종은 또 다른 손님에게 가서 ‘제 주인이 손님을 초청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손님이 말했습니다. ‘내 친구가 결혼하게 되어 내가 피로연을 준비해야 하기에 갈 수가 없네. 부디 저녁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실례를 용서하게.’ 종은 다른 손님에게 가서 ‘제 주인이 손님을 초청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손님은 말했습니다. ‘나는 밭을 샀는데 세를 받으러 가야 하기에 갈 수가 없네. 부디 저녁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실례를 용서하게.’ 그 종은 돌아가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께서 잔치에 초청한 사람들이 모두 초대에 응하지 못하는 실례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말했습니다. ‘길거리에 나가서 네가 보는 사람은 모두 데리고 와서 내 잔치에서 먹게 하라.’ 장사하는 사람들[거래인들]과 상인들은 아버지의 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65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이 있어 이를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었습니다. 농부들은 거기서 일하고 그 사람은 그들로부터 소작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농부들에게 하인을 보내 포도원에서 나온 이득을 받아오도록 했습니다. 농부들은 그 하인을 때려서 거의 죽게 만들었습니다. 하인은 돌아가 주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아마도 하인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리라.’ 주인은 다른 하인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그 하인도 때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의 아들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그들이 내 아들에게는 잘 대해 줄 것이다.’ 농부들이 그가 포도원을 상속받을 상속자임을 알고 그를 잡아 죽였습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으시기 바랍니다.”
6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이게 된 돌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
6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도 자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6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미움과 핍박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박해받지 않을 곳을 찾을 것입니다.[너희가 박해를 당하는 그곳에는 아무 자리도 발견되지 않으리라.]”
6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서 박해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하는 사람마다 그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배고파 하는 자의 배가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로다.]”
7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열매 맺게 하면 여러분에게 있는 그것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그것을 열매 맺게 하지 못하면 여러분 속에 없는 그것이 여러분을 죽일 것입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 Thomas O. Lambdin 외 번역본; <도올도마복음한글역주> 참조

64. (* 유사병행구: 마태 22:1~14, 누가 14:16~24)
* 도마복음에서의 비유: 예수는 가르침의 유력한 방법으로서 비유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에서 비유는 거의 모두 알레고리화되어 있고, 알레고리화되어 있는 비유의 의미는 대개 종말론적 전제를 갖고 있다. 반면에 도마복음에서는 비유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말론적 전제 또한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더 오래된 전승으로서 도마복음의 성격을 보여준다. 도마복음에는 14개의 비유가 등장한다(병행: 9, 20, 57, 63, 64, 65, 76, 96, 107, 109; 고유: 8, 21, 98; * 요한복음에는 비유 없음).
*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 공관복음서의 다른 병행구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도마복음의 비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상 비슷한 것 같지만 상황설정과 주인공에 차이가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미리 잔치 초대를 하였으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이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고, 마태복음 역시 그 상황설정은 유사하나 잔치 초대의 주체가 어떤 임금으로 되어 있고, 더욱이 나중에 초대를 받은 사람 가운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쫓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알레고리이다. 반면에 도마복음의 이야기는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다. 한편 다른 병행구들이 미리 초대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 무례한 사람들을 말하는 데 반해 도마복음은 어느 날 갑자기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마태나 누가의 병행구에서는 초대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난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으나 도마복음에서는 상식적으로 볼 때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바로 여기에 비유의 본래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앞 절 63절의 부자의 상황과 유사하다. 나름대로 일상적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저마다 사연이 있어 갑작스러운 초청에 응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초청대상들이 흥미롭다. 이들은 말미에 거래인들[사업가]과 상인들로 일컬어지는데, 구체적으로 사채업자, 부동산재테크로 한몫 본 사람, 웨딩홀사장, 농장지주 등이다. 사회적으로 부를 축적하여 많은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아주 일반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충분한 교양까지 갖추고 있다. 이 비유는 이들의 약속위반 또는 무례함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성실하고 일상적인 삶이 ‘아버지의 곳’, 곧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잔치, 진정한 진리의 깨달음과는 먼 사람들이다. 일상적 삶에 성실하지만 멈춰 서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실례이다. 실제 예수운동에 무심했던 이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65. (* 유사병행구: 마가 12:1~11, 누가 20:9~8, 마태 21:33~44)
* 포도원 지주와 농부들: 비유가 알레고리화된 경우와 그 원형을 갖고 있는 경우 의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매우 적절한 사례이다. 공관복음서의 병행구들은 이 이야기를 하나님이 보낸 아들, 곧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 이야기로 알레고리화하였다. 그 바람에 폭력적인 하나님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정당화되었다. 그런 일체의 알레고리화 흔적이 없이 보존된 도마복음의 이야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 비유는 실제 예수가 살았던 삶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수는 갈릴리 현장에서 활동하였고, 갈릴리는 부재지주들의 ‘천국’이었다. ‘농민’들의 천국이 아니었다. 일종의 소작쟁의에 해당하는 이런 사태는 갈릴리에서 자주 있었던 일이다. 비유라는 이야기 형식이 꼭 실제 사실 자체를 설명하는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실제 상황과 관련된 비유를 말할 때 화자가 심정적으로 어떤 편에서 이야기할지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며, 상실과 공멸의 사태가 발생하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도원에서의 소출을 극대화하여 착취하려는 지주의 탐욕이 불러일으키는 불행한 공멸의 상황에 빚대어 부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모두에게 쓰라린 상실을 가져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부자 이야기(63절) 및 사업가와 상인 이야기(64절)와 계속 연결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66. (* 유사병행구: 마가 12:10, 마태 21:42, 누가 20:17)
* 모퉁이의 머릿돌: 공관복음서는 이를 앞의 비유와 연결하여, 버려졌다가 머릿돌이 된 돌(aben)을 죽임 당한 아들(ben)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앞의 비유와는 독립된 파편으로, 세속에서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진리의 길, 깨달음의 길에서 선택받은 도반들을 격려하는 의미를 지닌다.

67.
* 자신을 아는 것: 깨우침의 정곡을 찌르는 말씀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음을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에서 공통되는 핵심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노자는 “자기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自知者明)” 했으며, 공자는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기를 위하여 배웠고,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하여 배운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 했다.

68. (* 유사병행구: 마태 5:11~12, 누가 6:22~23)
* 외부로부터의 박해: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이 박해를 받은 상황을 반영한다. 마태와 누가의 산상설교 또는 평지설교에도 유사 병행구가 나오지만 동일한 뜻을 지니는지는 의문이다. 오강남의 번역을 따르면 그와 유사해져 그 의미가 하나님 나라의 보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도올의 번역을 따르면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박해를 받는 곳에서 아무 자리도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머무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머무는 자리가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金剛經)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현실은 분명하지만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부의 박해가 스스로의 길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69. (* 하반절 유사병행구: 마태 5:6, 누가 6:21)
* 내부로부터의 박해: 앞 구절이 외부적·사회적 박해를 말한다면 이 구절은 내면적·정신적 박해를 말한다.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도마복음의 맥락에서 내면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과 통한다. 마음 속에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의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을 말한다.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는 것은 진정한 앎을 추구하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진정한 앎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내면의 갈등도 있을 까닭이 없다.
* 굶주린 자: 마태와 누가에도 유사 병행구가 있지만, 누가와 마태 사이에도 차이가 있고, 도마복음 또한 두 본문과 차이를 지닌다. 누가는 주린 자가 장차 배부르게 될 것을 말하고, 마태는 의의 주린 자로 말하고 있다. 도마의 구절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 주린 자와 배부르게 될 자가 동일한 주체가 아니라 어떤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청빈한 삶으로 배가 주린다면 다른 사람들의 배가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관념상의 낙원이 아니라 실제 삶의 관계 속에서 맛볼 수 있는 낙원이라면 그 해석이 원뜻에 가까울 것이다. 한편에서는 굶주림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식욕과 탐욕을 부추기는 오늘의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 주는 말씀이다.

70.
* 내 안의 빛: 도마복음의 정수를 재삼 확인해 주는 말씀이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살아 있다면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은 내면의 빛이요, 내면의 하나님이다. 공관복음서의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는 말씀과 통하는 의미로, 도마복음은 타력적 신앙보다는 자력적 신앙을 강조한다. 그러나 ‘타력’과 ‘자력’이 꼭 모순되기만 하는 것일까?

* 11강(12/20) 나는 빛이다 – 71~81로 이번 학기 일단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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