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11] 나는 빛이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23-12-20 21:45
조회
108
2023년 하반기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 다시읽기 11
2023년 9월 20일~12월 20일 11주간(휴강주간 제외) 매주 수요일 저녁 7:00~8:30
최형묵 목사

11강 (12/20) 나는 빛이다

7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집을 헐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도 그것을 [다시]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
72 어느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형제들에게 저희 아버지의 유산을 저와 함께 나누도록 말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누가 나를 나누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누는 사람입니까?”
73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부탁하여 일꾼들을 밭으로 내보내도록 하십시오.”
74 그가 말했습니다. “주님, 우물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은데 우물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75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에 섰으나 홀로인 사람만이 신방에 들 것입니다.”
7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상품을 많이 가진 상인이 진주를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그 상인은 현명하여 자기의 상품을 다 팔아 자기를 위해 그 진주 하나를 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없어지지 않고 오래 갈 보물을 구하십시오. 그것은 좀도 쏠지 않고 동록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7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입니다. 내가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나왔고 모든 것이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통나무를 쪼개십시오. 거기에 내가 있습니다. 돌을 드십시오. 거기서 나를 볼 것입니다.”
7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왔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까? 여러분의 왕이나 권력자처럼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부드러운 옷을 입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79 군중 속에 있던 한 여자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당신을 낳은 자궁과 당신을 먹인 유방은 행복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참으로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임신하지 않은 자궁과 젖 먹이지 않은 유방이 행복하다고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8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몸을 찾았습니다. 몸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이 그에게 값진 것이 아닙니다.”
81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부유해진 사람이라면 다스리는 힘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힘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버리도록 노력하십시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 Thomas O. Lambdin 외 번역본; <도올도마복음한글역주> 참조

71. (* 유사병행구: 마태 26:61, 마가 14:58, 요한 2:19)
* 다시 지을 수 없는 집: 다른 복음서들은 성전과 관련짓고 있으나 도마복음은 성전을 언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이 한 번 허문 집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짓겠다고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기존의 삶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모든 조건을 말한다. 진정한 앎, 진정한 깨달음은 기존의 삶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집을 허묾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시 짓기 위해 연연해할 것 없다.

72. (* 유사병행구: 누가 12:13~15)
* 나누지 않는다: 누가복음은 재산분할에 대한 요구에 대응하여 탐심을 경계하라고 일깨우고 소유 여부에 따라 진정한 삶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간결한 형태를 띤 도마복음 도 그와 동일한 동기를 드러내 보인다. 재산분할, 곧 배타적 소유의 확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도마복음은 예수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세상의 분할의 논리, 경계의 논리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넘어서는 예수를 말한다. 예수는 곧 하나된 이다.

73. (* 유사병행구: 마태 9:37~38, 누가 10:2)
* 추수할 일꾼: 이 말씀은 보통 교회에서 전도와 교회 확장의 논리로 남용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적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운동의 실제적 현실을 보여주는 구절로서, 그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가지만 정작 그 운동을 이끌 일꾼은 부족한 현실을 보여준다.

74.
* 우물가에 서성이는 사람들: 흔히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장면만 연상하기 쉽지만, 깨끗한 물을 끊임없이 공급받기 위해서는 우물 안으로 들어가 정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 또는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 우물 속으로 들어가 바가지로 퍼내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샘물을 마시고 싶어 하지만 그 샘물을 맛보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드문 상황을 말한다. 이 말씀은 깊이의 차원을 말하는 동시에 실천의 차원을 함축한다. 종교적 신앙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실상을 적절하게 말해 주고 있다.

75.
* 홀로인 사람: 앞 구절과 연속되는 동기를 지니고 있다. 신방 앞에서 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지만 정작 신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홀로인 사람뿐이다. 도마복음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모티프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신과의 진정한 합일을 일깨워 주고 있다.

76. (* 유사병행구: 마태 13:45~46, 누가 12:33~34)
* 가장 소중한 한 가지: 도마복음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주제이다. 큰 고기 하나를 남기고 작은 물고기를 버린다는 8절의 말씀과 상통하며, 75절의 말씀과도 의미상 직결된다. 수없이 많은 번다한 것들을 버리고 오직 소중한 한 가지를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 진정한 구원의 세계라는 것이다. 64절에서 상인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했는데, 상인의 현명한 처신을 들어 아버지의 나라를 말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상인의 현명한 투자를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상인이 가지고 있던 많은 재물은 팔아야 할 상품이지만, 신중하고 현명하게 지금 구한 것은 자신을 위한 보물이다. 곧 더 많은 상품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향유하고자 하는 소중한 것을 구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것을 향유하는 행위라는 데 초점이 있다. 투자자로서는 빵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 좀먹고 녹슬지 않는 진정한 삶을 구가하는 데 마음을 쏟으라는 것이다.

77. (* 유사병행구: 에베 4:6)
* 나는 빛이다: 도마복음의 진수요 모든 종교적 가르침의 진수라 할 만한 말씀이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스스로를 빛이라 하였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내용이 예수만이 빛이라는 배타적인 의미로 해석되는 반면 도마복음에서 ‘빛인 나’는 그 전반적인 맥락에서 볼 때 ‘진정한 자아’, ‘우주적 자아’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나’(요한 8:58)를 연상시킨다. ‘빛’은 때묻지 않은 순수 의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 주는 가장 보편적인 상징(오강남)으로, 여기서 예수의 자기이해는 사람의 자기이해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도올).
* 모든 것 위에 있고, 모든 것이며, 동시에 나가고 돌아오는 빛: 이 구절은 마치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여 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신 하나님’(에베 4:6)을 연상시킨다. 초월과 내재, 그리고 관계로 나타나는 빛의 속성을 말한다.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를 말하며, 이는 성·속의 이분법을 뛰어넘는다. 가장 하찮은 것 가운데서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을 말한다.

78. (* 유사병행구: 마태 11:7~8; 누가: 7:24~26)
* 무엇을 보러 광야에: 다른 병행구들이 세례 요한과 관련된 문맥에 등장하는 반면 도마복음은 그와 무관하다. 그저 예수와 그 도반들의 정황을 말할 뿐이다. 광야는 실제 광야일 수도 있으나 일상과 구별되는 차원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저 일상과 다른 어떤 체험을 하는 것으로 족할지 아니면 정말로 바라는 뭔가가 있는가? 그 바라는 바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라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 예수에게서, 또는 예수를 따르는 길을 그와 같이 생각했다면 착각하고 있다. 화려한 옷이 아니라 거친 옷을 입고 있지만 내면의 빛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슬람 신비주의자 ‘수피’(‘털옷을 입은 사람들’)가 추구하는 이상이기도 하다.

79. (* 유사병행구: 누가 11:27~28; 누가 23:28~29//마태 24:19//마가 13:17//누가21:23)
* 당신을 낳은 자궁과 당신을 먹인 유방: 다른 병행구들에서는 한 여인의 말과 예수의 말이 서로 다른 문맥에 등장하고 있고 종말론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지만, 도마복음서에서는 같이 등장하고 있어 그 대비되는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을 뿐 아니라 종말론적 의미와도 다르다. 여인의 외침은 매우 인간적인 진실과 축복을 함축하고 있다. 위대한 사람을 낳고 기른 여인의 위대함을 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마음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예수 역시 그 의미를 부정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정말로 복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여인의 외침이 혈연적이고 관습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그것을 뛰어넘어 말씀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된 것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이 말씀은 여자의 역할을 ‘여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인간’으로 선언하는 효과를 지닌다. 새로운 주체의 선언이다. 독신 여성 수도자의 전통은 이러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80. (* 유사병행구: 도마복음 56)
* 세상을 알게 된 사람: 56절에서 ‘시체’라는 말이 본문에서는 ‘몸’이라는 말로 바뀐 것만 다르다. 56절은 세상을 ‘시체’에 비유하여 그 시체와 같은 세상, 그 세상을 떠받치는 원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영적인 거듭남, 곧 깨달음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몸’이 ‘시체’라는 말을 단순 대체한 것이라면 크게 보아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몸’은 물질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그 물질세계의 원리를 알게 되면 오히려 거기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새겨볼 수 있을 듯하다.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 ‘시체’라는 말보다는 ‘몸’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오히려 그 의미를 새삼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다. 깨달은 사람은 현상으로서 물질세계에 집착하지는 않는다(諸法無我, 諸行無常, 一切皆苦)는 것과 상통한다(오강남). 자유를 역사의 필연에 대한 인식으로 본 헤겔의 인식과도 상통한다.

81.
* 힘을 가진 사람: 3절 하반부에서 “여러분이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가난에 처하게 되고, 여러분은 가난 그 자체가 됩니다.”라고 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서 부유해지고 힘을 가진다는 것은 그 반대의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도마복음에서 ‘다스린다’는 말이 타인에 대한 지배보다는 스스로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떤 깨달음으로 부유해지고 힘을 가진 사람의 경지를 말하고, 그것마저도 부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을 일깨우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한 업적마저도 부정할 수 있는 경지이다. 노자가 말한 ‘공을 이루면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 남은 내용 82~114까지는 2024년도 3월에 4~5회에 걸쳐 계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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