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세계 교회사 11] 중세 질서의 균열과 새로운 사상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9-28 22:18
조회
1787
천안살림교회 2011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1 - 세계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1년 9월 28일 / 최형묵 목사



제11강 중세 질서의 균열과 새로운 사상



1. 중세적 질서에 대한 저항: 이단 운동과 수도원 운동


중세 카톨릭 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탁하고 지상의 지배권을 획득함에 따라 점점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에 대한 저항운동이 이단 종파운동과 프란체스코회 등을 중심으로 한 수도원 운동으로 나타났다. 전자는 교회의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교황에게 복종하려 하지 않았다면 후자는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절대성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교회의 혁신을 꾀하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적 종파운동이 민중들 가운데 널리 퍼지게 된 반면 수도원 운동은 점차 교회화되어가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수도원으로는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가 있었다. 그런데 도미니크회는 처음부터 교회편에 서서 이단 척결 운동에 앞장섰다. 이 파의 수도승이었던 아퀴나스의 신학이 당시 교회의 공인된 신학이 된 것에서 보여지듯 이 파는 중세적 신학의 본산이었다. 한편 프란체스코회는 처음 창설자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ancesco, 1182~1226)의 정신에 따라 빈민과 병자의 구제에 노력하여 한 때는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프란체스코 사후 얼마 안 되어 교회편에 서서 이단 심문에 협력하게 되었다.


2. 교회 중심주의에 대한 저항 : 유명론(唯名論)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이 프란체스코회를 중심으로 중세말의 새로운 사상인 ‘유명론’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둔스 스코투스(Dun Scotus, 1266~1308)를 선구로 하여 등장한 이 유명론은 윌리암 오캄 (William Ockham 1280~1347)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이후 근대 사상의 선구가 되었다.

스콜라 철학에서 ‘보편’의 문제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스콜라 철학의 정통파는, ‘보편’은 실재성을 갖고 있으며 개체에 앞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를 ‘실재론’이라 부른다. 반면 유명론자들은 보편은 단순히 이름(곧 사고에 의한 추상의 산물)에 불과하며 개체만이 실재한다고 보았다. 정통파가 실재론의 입장을 취한 것은 카톨릭적=보편적 교회의 사고방식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단순히 개개의 신자 내지 지방교회의 집합체가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가장 보편적ㆍ실재적 결정이며, 지상의 하나님 나라의 영상으로서, 가장 근원적 보편적 실재인 하나님에 가까운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당연히 ‘실재론적’ 철학을 요구하여 이것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명론은 이제까지 개개 인간의 현실생활을 자극했던 보편으로서의 교회가 점차 그 힘을 잃어 단순한 관념으로까지 후퇴하고, 대신에 교회적 지배에서 독립한 개개의 인간이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시작한 데 대한 사상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명론은 영국 경험론으로 발전하였으며, 또 한편 교회주의적 세계관을 탈피해서 성서로부터 진리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오캄의 입장은 루터의 성서주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3. 신앙의 외적 형식에 대한 저항: 신비주의


교회 중심적 세계관에 반대하여 중세 말기 및 근대 초기의 민중운동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사상이 신비주의이다. 신비주의는 그 기원이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형태면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다. 사실 그것은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신앙형태라기보다는 전 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자기를 전개해 온 신앙형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 모든 신비주의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자아와 자연, 혹은 인간의 내적 자아와 하나님과의 직접적 합일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모든 신앙은 이러한 요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독 신비주의라 불리는 신앙은 내적 자아와 절대자와의 합일을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신앙을 말한다. 이러한 신앙형태는 때로는 현존하는 체제와 질서에 대한 거센 저항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끝없는 내적 침잠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개 내적 자아가 일정한 공동체, 특히 민중의 주체성과 일치될 때에는 전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개인의 주체성과 일치될 때에는 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폭발적 힘이 유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는 후자의 유형도 사회적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즉 개체의 자아를 중시하는 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회적  원리가 기존질서를 압도하고 있을 때 그것은 폭발적 힘을 분출하는 것이다.

  중세 신비주의의 거봉은 요아킴 폴로리스였다. 그는 성령의 제3시대를 말하면서 인간 사회에 성령이 현존함으로써 신ㆍ인 구별이 없이 일치되는 자율의 시대를 주장하는 점에서 신비주의적 근본원리를 철저하게 구현하였다(이에 대해서는 제1강 참조). 12세기 곧 요아킴과 동시대에는 베르나르(Bernhard)와 성 빅토르(St. Victor)파의 사람들과 같은 신비주의자들도 있었다. 13~14세기에는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신비주의적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마이스터 카알 에카르트(Meister Karl Eckhart, 1260~1327)는 이들을 대표하였다. 그는 인간의 영혼 가운데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작용으로서의 신적인 불꽃이 있고, 인간은 이 불꽃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신과 결합하여 합일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권위는 신비주의를 통하여 개개의 ‘인간’ 영혼 가운데 내재화되었다. 이 점에서 신비주의는 새로운 사회적 원리를 예시한 유명론과 동일한 맥락에 있었다. 또한 신비주의는 도시 수공업자와 농민 등 하층 민중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아, 훗날 루터의 종교개혁과 동시에 뮌처의 농민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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