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세계 교회사 04] 그리스도교의 확장과 교회의 주도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8-11 16:34
조회
1946
천안살림교회 2011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1 - 세계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1년 8월 10일 / 최형묵 목사


제4강 그리스도교의 확장과 교회의 주도권


1. 그리스도교의 확장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선교는 점차 이방지역으로 확대되어 몇몇 중요한 도시에 선교거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예루살렘 - 모교회 / 안디옥 - 최초의 이방 선교 중심지이자 동방 신학의 요람 / 로마 - 서방교회의 중심지 / 알렉산드리아 - 북아프리카권의 중심지로 초대 교회 신학의 산실 / 콘스탄티노플 - 로마제국의 새 수도로서 정치적 중심 역할에 힙 입어 로마교회에 맞선 동방 교회의 중심지.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이상의 중심 도시 이외의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어 나갔고 명실상부한 세계종교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 남부 가울지방 - 2세기 후반 / 잉글랜드의 정확한 선교시기는 알 수 없으나 터툴리아누스가 208년경에 쓴 글에서 그곳의 신자에 관해 언급 / 아일랜드에는 영국 출신 패트릭(389년경 출생)에 의해 선교. 셀틱(Celtic) 그리스도교 / 시리아에는 431년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파에 의해 선교. 이후 네스토리우스파의 당나라 선교(景敎) / 에디오피아에는 간다게 여왕 내시 빌립에 의해 선교. 콥틱(Coptic) 교회 / 아르메니아에는 410년경 아르메니아 알파벳 창제와 더불어 선교 / 인도에는 철학적 성향의 사도 도마에 의해 선교. 현재에도 인도 서남부에 도마 그리스도인이 있음 / 프랑스 지역에는 성 마르틴(316~397)에 의해 선교. 이후 프랑크 왕 클로비스가 496년(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성탄절에 3,000명의 병사와 함께 세례를 받아 중세기의 그리스도교와 국가권력간의 관계의 효시를 이룸.

                        

2. 교회의 주도권


2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회 공동체들은 직제의 차원에서 동등하게 공존하였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초기 카톨릭교회의 등장과 더불어 점차 위계적 구조를 갖추어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교회 내적 요인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문화적, 정치적 요인에 의해 크게 영향받았다.

2세기 초반부터 제기된 신학 논쟁에서 교회 전승의 진정성을 가르는 기준으로 ‘사도적’ 감독직이 부각되었으나 그것이 곧바로 현실의 교회의 위계질서를 규정짓지는 않았다. 대개 교회는 문화권 혹은 제국 내의 행정조직 단위의 권역을 형성하고 그 지역 중심지의 감독이 주교 → 대주교의 역할을 맡는 식이었으며, 제국 내 공의회가 열릴 때에도 개최지의 대주교가 의장을 맡았다.

일찍이 로마의 교회가 제국의 수도로서 누렸던 영예와 더불어 사도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입지 때문에 라티어를 쓰는 서방 교회들의 중심이 되는 수위권을 주장하여 총대주교좌로 우월한 지위를 누렸다(물론 저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론강 유역의 교회들).  

반면에 그리스 문화권에 해당하는 동방지역에서는 배타적인 수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도적인 교회가 없었다. 그러나 코스탄틴노플이 로마제국의 새 수도가 되면서 황제의 도시로서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경향이 생겼고, 이에 따라 ‘사도직 계승’을 주장하는 로마 교회와 ‘정치조직과 교회조직의 병행’을 주장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교회의 수위권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이후 교회이 수위권 갈등은 여러 신학적 정당화의 시도들과 더불어 계속되지만(예>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되는 전통을 따라 우리 몸에 5관이 있듯 교회에도 다섯 총대주교가 있다는 주장: 예루살렘/안디옥/알렉산드리아/로마/콘스탄티노플), 결국 6세기에 이르러 ‘총대주교직’ 개념이 일반화되면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두 총대주교만 남게 된다(베드로의 유물과 안드레아의 유물).

이처럼 두 개의 교회가 각각 중심지를 형성하면서 이후 교회 역사는 양 교회의 계속되는 긴장 속에 놓이게 되는데, 이 양 교회의 긴장은 교회사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의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동ㆍ서로마 제국이 갈리고(395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프랑크왕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로마교회는 북서부 유럽에 손을 뻗쳐 나감으로써 동유럽과 아시아에 대한 시선을 돌릴 수 없었고,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내의 동방교회는 그 나름의 교회로 발전해나간다. 오늘날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차이가 여기에서 비롯된다(그러나 결정적인 결별은 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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