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세계 교회사 06] 수도원 운동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8-24 22:32
조회
1844
천안살림교회 2011년 수요 성서연구

기독교의 역사 1 - 세계 교회사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 2011년 8월 24일 / 최형묵 목사


제6강 수도원 운동과 새로운 시대를 위한 준비



1. 수도원 운동의 기원


흔히 수도원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공인으로 인한 ‘세속화’에 대항해 진정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일면적 이해일 뿐, 수도원 운동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기원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기 이전부터 수도원운동의 예비적 형태들이 있었다.

신학적 기원: 제도화된 수도원 이전부터 존재한 금욕사상 / 4세기에 이르러 제도화 / 절제와 희생정신

형태상의 기원: 방랑금욕가들 / 광야의 은자들 (엘리야와 세례 요한) / 교회 안에서의 금욕생활 / 교회공동체 안의 특정 신분들 - 예>처녀와 과부 / 이교적 철학과 종교의 생활공동체


2. 수도원의 탄생


1) 은둔 수도원 운동과 안토니우스

356년경 대략 100(105)세쯤에 죽은 안토니우스는 수도생활 형태에 지속적 영향력을 끼친 최초의 인물. 읽고 쓸 수 없었으며 콥트어만을 말하고 기억에 의해 성서해석(아타나시우스에 의한 전기). 이집트 광야에서의 은둔과 금욕, 고행. 그를 보고 따르려는 추종자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수도사의 아버지(Abba)가 됨 / 그를 하나의 머리로 하는 순수한 은둔 공동체: 규정 없이 주야로 명상, 기도와 명상을 번갈아 하며 욕망을 억제, 노동은 생활부양이 목적이 아니라 순수한 수도적 목적, 가난과 무소유, 아빠에 대한 ‘순종’,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일.

4세기에는 이집트 외에 팔레스틴,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에서 많은 은자들이 있었음. 이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예배를 위해 만났고 일종의 공동회를 만들었으며 최소한의 물질적 문제를 위해 역할 분담, 그러나 본격적 수도원적 공동생활은 아직 아님.


2) 공동 수도원 운동과 파코미우스

안토니우스와 동시대인이면 다소 대조적인 파코미우스는 320년에 처음으로 수도원을 건설. 자유로운 결합 - 수도사 개인방, 개인 기도의 의무, 토ㆍ일 성찬식, 아빠에 대한 순종, 그러나 처음으로 규율 도입, 건축상의 고려, 공동체 생활 - 기도, 예배, 노동. 노동을 통해 수도자들의 물질적 생활 보장. 서약은 없으나 지속적인 훈련, 교육에 대한 특별한 관심, 극단적 금욕은 배제, 파코미우스가 죽었을 때 대략 5,000명의 수도자.


3) 바실리우스의 수도원 운동

바실리우스는 안토니우스나 파코미우스와는 달리 ‘순수한 수도생활’을 배격하고 수도원적 공동체의 이상을 주창. 인간은 본래부터 공동체로 생활하도록 지음받았다는 생각 - “자기 혼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서약을 동반한 엄격주의. 외부를 향한 수도원의 활동, 수도원과 마을의 인접, 자기훈련과 자기부양을 위한 노동의 요구.


4) 서방의 수도원 운동

서방의 수도원들은 동방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지만, 성격상 확실히 구분된다. 동방의 수도원들이 대체로 개인적 ‘성화’에 치중했다면 서방의 수도원들은 엄격한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였다: 엄격한 규율과 노동의 강조. 이러한 서방의 수도원은 북아프리카의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기반이 조성되었고, 이후 로마 귀족 출신인 베네딕투스(480~550경)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립된다.


3. 고대 수도원 운동의 의의


수도원 운동은 우선 교회가 세속권력과 결탁해 순수성을 잃어갈 때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원동력으로 역할을 한다. 아울러 엄격한 규율에 따른 노동과 학문활동으로 사실상 학문과 문화 나아가 산업의 요람으로 역할하게 되어, 중세교회가 유럽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사실상의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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