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자녀의 대학 진학을 기뻐할 수만 없는 까닭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1-02-14 22:16
조회
2520
* <주간 기독교> 다림줄 12번째 원고입니다(110214).


자녀의 대학 진학을 기뻐할 수만 없는 까닭


둘째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하여 이제 두 녀석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주변에서 자식 다 키웠다는 이야기를 하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며 정말 그런가 싶다. 둘 모두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여 대학에 진학하였으니 대견하기도 하고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 기뻐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우선 등록금 고지서를 받는 순간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이 사라지는 체감을 겪어야 했다. 사립학교에 진학한 큰 녀석 등록금은 애초 감당하기가 무리라 입학 때부터 녀석에게 채무자 딱지를 붙여 주고 말았다. 둘째 녀석은 국립학교에 진학해 등록금이 그 절반이라 아슬아슬하게 채무자로 만드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액수이다. 가히 천문학적 비용이라 불리는 대학 등록금에 관한 논란이 분분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뚜렷한 묘책이 없다. 교육이 공공재에 해당한다면 사회적으로 합의된 대안을 찾아야 할 터인데 묘안은 없고, 고스란히 개별 가계 부담으로 남아 있다.


고교 졸업생 대비 대학진학율이 80%를 넘어서면서 고등교육의 기회는 마치 여느 상품을 소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비싼 비용을 감당하면서 굳이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알아서 하라는 듯이 내버려둬도 되는 것일까? 실제로 오늘 대학교육은 그렇게 철저히 시장원리에 내맡겨져 있다. 대학당국은 경쟁력을 강조하고 학생은 고급 상품을 소비하는 고객이 되어 버린 듯한 지경이다.


그렇게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향유하는 상품이 만족감을 준다면 그나마 다행일까? 유감스럽게도 만족감은 높지 않다. 비싼 등록금에 가위 눌린 학생들은 스스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치지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의 기회는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지성의 전당이오,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정신의 보루로서 대학에 대한 기대 또한 사라진지 오래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 필요한 인력 양성이라는 기능 교육의 측면에서도, 비판적 인문정신의 배양이라는 대학 본연의 교육적 측면에서도 오늘 대학은 위기 가운데 있다.


흔히 한국 경제의 발전 요인 가운데 하나로 높은 교육열을 꼽고 있지만, 오늘 대학교육의 실상은 그 교육열이 더 이상 사회발전의 긍정적 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대책없는 양적 팽창 가운데서 겪는 오늘 대학의 위기는 그 자체로서 사회 전반의 위기를 드러내 주는 하나의 뚜렷한 징후일 뿐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이제 가르치는 이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마주 대해야 한다. 예정한 수업 내용에 충실해야겠지만, 무엇보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스스로의 현실을 직시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함께 헤치고 나아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거들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겠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