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출애굽기 18] 시내산에서 받은 말씀, 십계명 - 20:1~26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10-01 21:33
조회
2487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1 <출애굽기 읽기>  

2008년 4월 16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18 (10/1) 시내산에서 받은 말씀, 십계명 (20:1~26)



1. 서언(20:1~2)


시내산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다. 통상 십계명으로 알고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그것이 주어지는 맥락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서 십계명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중요한 논란거리이다. 그 내용으로 볼 때 십계명은 광야시대 산물이라기보다는 정착시대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별히 십계명 후반부의 소유에 관한 내용은 정착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십계명은 특정한 시대 법적 주체를 향한 말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한편 십계명이 갖는 보편적 성격을 전적으로 간과할 수 없다. 십계명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규제하기 위한 법으로서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맥락에서 자유의 보존을 위한 말씀으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서언은 십계명이 갖는 보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2. 십계명(20:3~17)


십계명의 첫 대목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을 선포한다. 그것은 자유민으로서 이스라엘이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궁극적 근거에 해당한다. 다른 신들에게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풍요와 다산 종교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을 말하며, 오로지 이집트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 하나님은 일체의 형상을 거부한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존재, 가시적으로 대상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으로도 확정할 수 없는 존재이다.

대상화를 거부하는 하나님은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마저도 금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 ‘야훼’를 직접 부르지 않는 전통의 근거가 되었지만, 이 계명의 의미는 그와 같은 차원을 넘어선다. 한편으로 이 계명은 법정에서 진술할 때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함으로써 악용하는 차원을 암시하고 있기도 한데, 그 근본적 의미는 형상 금지 계명과 상통한다. 그저 하나의 입장, 하나의 견해가 하나님의 뜻으로, 진리로 오용되는 모든 현상을 이 계명은 금지하고 있다.

안식일 계명은 가장 장황한 부연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이 계명에 딸린 부연설명은 안식일의 참뜻이 창조의 질서를 완전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 점에서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이 갖고 있는 보편적 성격을 집약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주일성수’와 같은 하나의 규정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이치를 환기시키고 있는 계명이다.

부모공경에 관한 계명에는 간략한 부연설명이 함께 등장한다. 부모를 공경하여야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것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생명의 지속성을 일깨워준다.

살인 금지와 간음 금지 계명은 부모공경 계명과 함께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그 대상으로 한다. 저마다 삶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해 어떤 위해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하지만 근본적인 진실을 말하고 있다.

도둑질과 거짓 증거, 그리고 이웃의 집이나 아내, 가축 등에 대해 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소유물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거짓 증거는 단순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의 위증과 관련되어 있다. 이 계명들은 자유의 보존을 위한 물적 기반이 폭력적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올바른 예배(20:18~26)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것은 진실을 접하는 인간의 원초적 태도이다. 하나님의 진실을 직접 대한다고 느낄 때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것은 거꾸로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백성들과 떨어져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예배에 관한 말씀을 내린다. 이미 내린 십계명의 앞부분 말씀을 환기시키며 어디서든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여 예배드리도록 하신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예배 제단을 꾸미는데 어떤 인위성도 배제하고 있는 점이다. 가시적ㆍ인위적 절차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예배의 근본임을 일깨운다. 높은 층계를 만들어 알몸이 드러나게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것은 겉옷 외에 별도의 속옷을 입지 않았던 상황을 암시하며, 동시에 다산종교의 성적 제의를 은근히 혐오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 다음 주제는 “여러 가지 법들 1”(출애굽기 21:1~31)입니다.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