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출애굽기 25] 금송아지 사건 - 32장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2-04 22:04
조회
2792
천안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1 <출애굽기 읽기>  

2008년 4월 16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25 (2009. 2/3) 금송아지 사건(32장)


1. 금송아지(32:1~6)


모세가 시내산에 있는 동안 산 아래 있는 백성에게는 기다려야 하는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기다림의 여백은 때로 유혹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조급해지고 그 조급함을 달래려는 방법을 찾는다.

산 아래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은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대신 보이는 신을 섬기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으로 섬겼다. 그들은 그 금송아지를 야훼로 불렀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욕망을 신으로 섬겼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1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맞서 단과 베델에 송아지상을 세웠던 사실을 반영하고 있고, 그것을 비판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유다와 결별한 북이스라엘의 길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과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유다의 입장에서 북이스라엘의 길은 명백히 배반의 길, 곧 하나님에 대한 배역의 길이었다. 금송아지는 그 배역의 길을 상징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입장에서 금송아지 사건은 언제나 조급한 가시적 성과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 그럼으로써 진정한 신앙의 길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출애굽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인간 삶의 실상을 출애굽 사건의 맥락에서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              


2.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32:7~14)


당신에게서 마음이 떠나 자신들이 만든 대상물을 섬기는 백성을 보고 하나님은 분노하신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은 배역한 백성들을 보고 그들을 진멸하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겠다.” 이 선언은 미묘하다. 배역한 백성에 대한 분노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지만 그 배역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모세는 구분하여 복을 내리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백성에게 죄의 책임은 묻겠지만 당신의 신실함을 저버리지는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때 더욱 미묘한 처지에 놓인 사람은 모세다. 백성과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구원의 보장을 받은 사실에 만족할 것인가, 아마도 모세에게는 그와 같은 물음이 제기될 법한 상황이다. 여기서 모세는 신실한 지도자답게 백성의 편에 서는 선택을 한다. 백성들의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을 택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당신이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환기시킴으로써 하나님 스스로 자신에게 맞서게 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청을 받아들여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않기로 작정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의 선언을 번복했다. 이것은 분노에 맞선 사랑의 승리를 뜻한다.            


3. 모세의 거룩한 분노(32:15~20)


하나님으로부터 분노를 거두겠다는 확약을 받았지만,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세는 백성에 대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의 증거판을 백성 앞에서 깨뜨린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겠다고 하신 마당에 여전히 진노하는 모세의 태도, 게다가 거룩한 말씀의 증거판까지 깨뜨리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인간의 태도를 환기시킨다. 배역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었다고 선언하는 행위다. 결국 약속을 회복하는 일은 백성의 거듭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에 살라 그 가루를 물에 풀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시게 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합리적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판결을 뜻하는 고대적 관습이다.  

  

4. 아론의 변명(32:21~24)


모세는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끈 아론에게 책임을 묻는다. 백성을 거듭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회복하는 길을 택한 모세에게는 일관된 태도이다. 아론은 마지못해 수세적인 변명으로 일관한다. 백성들이 요청하니 별 수 없이 응했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더니 금송아지가 생겨났다고 변명한다. 아론의 이 변명 또한 미묘하고도 흥미롭다. 언뜻 보면 지도자답지 못하게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아론은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회피하고 있는 이 아론의 태도는 옳은 길과 그른 길 가운데서 번민했던 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모든 유혹은 그 갈등을 유발한다.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거나 단번에 뉘우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어물쩍 변명하는 그의 태도는 유혹을 받을 때의 모든 인간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5. 벌을 받은 백성(32:25~29)


아론의 처지를 헤아렸던 탓일까? 모세는 사실상 아론의 변명을 받아들이고 방자한 백성을 벌하는 길을 택한다. 모세는 레위인들을 불러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도륙하도록 명한다. 이로써 무려 3000명에 이르는 이들이 도륙 당했다.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끔찍한 징벌이다. 그러나 잘못한 백성의 책임을 묻고자 했던 모세의 일관된 태도에서 비롯되는 징벌이었다는 점만 헤아려 볼 일이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이 없을 때 역사가 어떻게 왜곡되는가?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그것이다. 모세는 백성이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는 왕권에 의해 제사장직에서 배제되었던 레위인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레위인들의 정당한 복귀를 주장하는 이야기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6. 다시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모세(32:30~35)


이미 금송아지 사건은 일단락되었는데, 말미에 다시 그 사건의 과정을 압축하고 있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하나님의 진노와 백성과 함께 하는 모세의 태도를 간결하게 전하는 이 내용은 앞의 내용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징벌이 유예되고 사후에 이뤄진 것으로 기록된 점이 앞의 내용과 차이난다. 금송아지가 북이스라엘 세워진 것을 환기하고 있는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징벌에 관한 내용을 시사하는 것 같다.

  


* 다음 주제는 “백성의 회개”(33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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