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뒤집어진 평화 의식과 기독교의 위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0-06-23 17:32
조회
2604
*<주간 기독교> 다림줄 여섯번째 원고입니다(100621).


뒤집어진 평화 의식과 기독교의 위기


월드컵 경기 개막 즈음에 외국 기자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북한과 다른 나라가 경기할 때 어느 팀을 응원할 거냐고. 대부분 당연히 북한을 응원한다는 응답에 외국 기자들은 갸우뚱했다고 한다. 우리가 듣기에는 그 질문 자체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한반도에서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합적인 삶의 현실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의 시선에서 볼 때는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황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그런 엉뚱한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사실은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천안함 사태로 정부가 유엔 안보리에 북한 제재에 관한 안건을 내놓은 마당에 비정부 민간단체 참여연대가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해서 소동이 벌어졌다. 그것은 진실을 밝혀 의혹을 푸는 차원의 문제인데도, 정부와 언론 및 극우 단체에서는 이적행위 운운해가며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때 아닌 마녀사냥 몰이에 나섰다. 애초 그 사건에 대한 강경일변도의 대처방식은, 그에 대한 시민사회의 이의제기에 대해서도 일관한 셈이다. 합리적인 소통은 사라져버리고 극한적인 대결과 응징의 논리만 조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와 같은 극한적인 대결의 상황을 조장하는 정서적 원천 가운데 하나가 현실의 기독교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때마침 6.25 전쟁 평화기도 준비위원회 이름으로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평화기도회는 그 의혹을 뒷받침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 기도회를 주도한 이들은 교계의 내로라하는 이들이었는데, 그 기도회의 주 강사는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 ‘자유와 평화의 전도사’로 나섰다. 평화기도회라는 형식에 “분단을 넘어 평화”라는 주제가 내걸렸지만, 이미 짜여진 그 조합만으로도 이미 강렬한 메시지는 던져진 셈이었다. 한마디로 힘의 우위에 의한 평화를 그 기도회는 만천하에 공포한 것이다.


힘의 우위에 의한 평화, 그것으로 과연 진정한 평화에 이를 수 있을까? 나아가 그것이 과연 기독교 신앙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물론 다들 기독교 신앙은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평화를 이루는 방법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목적과 방법 모두 평화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철저한 입장이 있는가 하면, 평화의 목적을 위하여 때로 불가피하게 전쟁의 수단이 동원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입장도 있다. 어느 한편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 또는 적절한 힘의 균형 상태로 전쟁이 억제되는 경우가 많으니 후자의 입장이 현실적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 유지되는 평화가 진짜 평화인지는 한참 되물어야 할 일이다. 더욱이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정말 깊이 따져야 할 일이다. 그것은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일방적 패권의 논리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본인을 평화의 전도사로 여기는 의식은 그 성찰의 여지를 아예 막아버린다. 오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지만 공신력은 추락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 위기의 본질은 이와 같은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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