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사기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마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9-09-07 11:48
조회
350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81번째 원고입니다(090907).


사기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마음


일요일 아침이면 우리 집은 가장 부산하다. 평일에는 식구들이 제 각각 다른 시간에 집을 나서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일제히 같은 시간에 한 차를 타고 교회에 나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저것 챙겨 갈 것도 많다.


어느 일요일 아침 그 부산한 와중에 집사람은 갑작스럽게 또 챙겨야 할 것이 떠올랐다. 이래저래 선물로 들어온 차를 교회에 챙겨가야겠다고 했다. 마침 전 주간에 다녀가신 일본 목사님께서 선물로 주신 차도 있었던 터라 생각이 난 모양이다. 현관문 밖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찻장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와장창! 쨍그렁!”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또 일 저질렀네!”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찻장 문을 여는 순간 찻잔들이 떨어져 깨져버린 것이다. 부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에 나서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까지는 탈이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 순간이었다.


“아니, 남아나는 게 없어요. 그걸 또 깨먹으면 어떻게 해요?” 내 입에서 대번에 튀어나온 소리였다.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엌에서도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먼저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어보면 안 돼요?” 결혼 20년만에 처음 듣는 고성이었다. 순간 싸해지는 느낌이었다. ‘진짜 일 났군! 평화로운 주일 아침에 어쩌다 찻잔은 깨져서 그 평화를 앗아가누?’ 하는 생각과 함께 한순간에 천근만근 무게에 짓눌리고 말았다.


큰 녀석과 함께 차에 오른 집사람이 “미안했지?” 한다.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어디 다친 데는 없어?” 했더니만 “됐네요!” 응수한다. 깨진 그릇이 봉합될 수 없듯이 깨진 마음 또한 쉽사리 봉합될 수 없다는 걸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태연하게 교우들을 맞이하고 예배에 임했지만 무거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설교 시간이면 가장 말똥말똥한 눈으로 시선을 마주치는 집사람이었지만 그 날은 설교도중 한 순간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제 잘난 척 신나서 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살아 왔지만, 실은 20년 동안 같이 사는 한 사람의 삶을 일방적으로 파먹으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어 아린 마음을 수습하기 어려웠다. 주제에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무슨 설교를 한단 말인가 싶었다.


그나마 깨진 그릇과 달리 깨진 마음은 수습할 수 있어 다행일까? “쨍그렁!” 그릇이 그렇게 숱하게 깨지더라도 서로의 마음만은 깨지지 않도록 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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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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