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7] 폭행 당하는 야곱의 딸 디나 - 창세기 34:1~31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9-05 21:26
조회
2940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7 (2007. 9/5) 폭행 당하는 야곱의 딸 디나 - 창세기 34:1~31


1. 세겜 땅에서의 야곱과 그의 딸 디나


야곱의 가족이 세겜 땅에서 비로소 정착생활을 시작할 무렵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난다. 야곱의 딸 디나가 밖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다. 토착민인 히위족 하몰의 아들인 세겜은 디나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랑을 고백하고 몸을 범해 버린 것이다. 세겜은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와 결혼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결혼을 추진한다. 세겜의 입장에서는 디나를 사랑하였기에 결혼이 성사된다면 디나를 범한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일 세겜의 뜻대로 되었다면 이 사건은 아름다운 로맨스로 기억될 수도 있었고, 서로 다른 가족 집단의 공존에 관한 미담으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야곱과 그 아들들은 이 일로 분노하고 있었다. 세겜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고 생각해 슬픔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야곱 앞에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나타나 제안을 한다. 디나를 자신의 며느리로 주고, 자신의 딸들을 며느리로 데려갈 것을 제안한다. 통혼 관계를 맺어 두 집안이 그 지역에서 공존하자는 제안이었다. “우리와 함께 섞여서, 여기에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땅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장사도 하고, 여기에서 재산을 늘리십시오.” 세겜도 간청한다. 일방적으로 디나를 범한 것은 잘못이지만, 대신에 자신이 치러야 할 대가를 충분히 치르겠다고 한다.

하몰과 세겜의 제안은 매우 정중하고 현실적이었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 야곱의 아들들은 제안을 받아들인 척 하면서 조건을 내건다. 할례를 받지 않은 족속에게 자신들의 누이를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하몰 편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으면 그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한다. 하몰과 세겜은 모든 성읍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 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동의했다.

세겜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아직 상처가 아물기 전 사흘 째 되는 날 야곱의 아들들, 곧 디나의 친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성읍으로 쳐들어가 성읍의 남자들을 몰살시키고 만다. 뿐만 아니라 죽은 시체를 털고 어린이와 아낙네를 사로잡고 온갖 것들을 다 약탈한다. 누이가 겁탈 당한 것에 대한 보복치고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아주 처참한 잔혹극을 벌인다. 사태가 그와 같이 되자 야곱마저도 시므온과 레위를 나무란다. 그런데 야곱이 아들들을 나무란 것은 잔혹극을 벌였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사태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안전이 거꾸로 위협 당하게 될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너희는 나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이나,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이라고 여길 게 아니냐? 우리는 수가 적은 데, 그들이 합세해서, 나를 치고, 나를 죽이면, 나와 나의 집안이 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생존의 지혜를 발휘해 온 야곱다운 판단일까? 아들들은 자신들의 누이를 욕보인 데 대한 보복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결국 야곱의 가족은 세겜 땅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그 땅을 떠나야만 했다.  


2. 여러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


야곱의 가족이 세겜 땅에서 정착을 시도하는 과정에 겪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사실 여러 복잡한 배경과 서로 다른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이 이야기는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접어드는 과도기의 가족관계에 관한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단순한 알력과 분쟁 차원이 아니라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부족집단들과의 관계에 관한 상황을 동시에 보여준다. 디나가 세겜에게 당하고 난 다음, 야곱과 하몰이 만난 것까지는 두 집안 간의 관계에 관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몰이 성읍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부터 야곱의 아들들이 학살을 저지른 사태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부족집단들간의 갈등관계를 반영한다.

이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에서도 또한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가족단위로 이동이 이뤄지던 유목 시대의 배경을 반영하는가 하면, 보다 큰 부족단위로 정착이 이뤄지던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이 이야기가 기록될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앞 부분은 유목집단들이 오며가며 서로 이런저런 갈등과 화해가 이뤄졌던 시대를 반영한다.

하몰의 제안, 그리고 야곱의 두 아들에 의한 보복 사태는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부족집단들간의 공존 형태를 시사함과 동시에 어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극한적인 갈등과 대결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단일한 야곱 가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훗날 ‘야곱가문’ 곧 이스라엘에 편입된 디나와 시므온, 레위 집단이 세겜지역의 부족들과 갈등을 겪었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디나로 대표되는 집단은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시므온과 레위 집단은 현저히 약화된 한 계기를 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지역에 보복을 가했다고 하지만, 이 일 직후에 이들은 그 지역을 떠나야만 했다. 그것은 그 일이 성공보다는 실패를 안겨주었다는 것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야곱의 유언에는 ‘시므온과 레위의 칼’을 저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49:5~7), 이후 역사에서 시므온은 유다 지파에 편입되어 그 존재가 미미해졌고 레위는 더 이상 전사로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별도의 자기 몫을 받지 못하고 전국에 흩어져 제사장의 직분을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할례 받지 않은 이방족속과의 통혼에 대한 거부와 혐오감은 부족시대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바빌론 포로기 직후의 상황을 반영한다. 신학적인 의미부여가 거의 없는 이 이야기는 이방인과의 통혼 관계를 거부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을 지켜낸 일화로서의 성격을 가장 중요한 뜻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기록될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조상들의 이야기를 기어해낸 하나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 다음 주제는 “베델로 간 야곱의 가족”(창세기 35:1~29)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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