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8] 야곱 이야기의 결말 - 창세기 35:1~29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9-19 22:04
조회
2459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8 (2007. 9/19) 야곱 이야기의 결말 - 창세기 35:1~29


1. 베델로 향하는 야곱의 가족(1~15)


세겜에서의 소동 이후 야곱의 가족은 세겜을 떠나는 여정에 오른다. 이 이야기는 야곱 이야기의 결말로서 야곱가족의 여로와 족보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여행경로가 공간적 이동을 뜻한다면 족보는 시간적 이동을 뜻한다. 그 이동과정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듯, 야곱의 이야기는 그렇게 결말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세겜에서 정착할 수 없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베델로 떠나라고 하신다. 베델로 떠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야곱이 이전에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씨름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그것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야곱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식솔들에게 명한다. 가지고 있는 이방 신상들을 다 버리고, 목욕재계하고, 새 옷을 갈아입으라 한다. 후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이 대목은,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강조한다. 야곱은 가족들이 가져온 신상들과 귀고리 등 장신구마저 다 거두어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밑에 묻어버린다. 귀고리는 단순한 장신구에 그치지 않고 부적과 같은 기능을 지녔던 것 같다. 새로운 출발은 과거와의 단호한 단절을 뜻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베델에 이르는 동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는다. 야곱 가족의 여행이 수많은 곡절과 사연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오랫동안 기억된 사실을 또한 시사한다. 훗날 사사 드보라 이름이 이로부터 기원할 만큼 그 존재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참조 사사기 4:5).

베델에 이르러 야곱은 다시 하나님을 만나 그곳에서 다시 제사를 드린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약속하신 사실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이전에 야곱이 바로 그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실을 압축적으로 재현해주고 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새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이름 곧 이스라엘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개인 야곱보다는 민족으로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의미를 강조한다.  


2.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추행(16~22)


야곱의 여정은 베델이 종착지가 아니었다. 그 가족은 계속 여행을 하는데, 계속해서 곡절을 겪는다. 라헬이 산고 끝에 아들을 낳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라헬은 산고로 숨을 거두게 된다. 숨을 거두며 라헬은 그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곧 ‘내 슬픔의 아들’이라 이름짓지만, 야곱은 그 이름이 불길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서 ‘베냐민’ 곧 ‘오른손의 아들’ ‘남쪽의 아들’로 바꾼다. 라헬은 베들레헴 근처에 묻힌다. 베들레헴은 여기서 처음 등장하는데, 그곳은 에브랏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에브랏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라마의 한 지명이다. 이로부터 라헬의 울음소리가 라마에서 들려온다는 표현이 유래되었다(예레미야 31:15; 마태복음 2:17~18). 또한 라헬의 무덤은 오랫동안 이정표 구실을 했던 것 같다(사무엘상 10:2; 예레미야 31: 15).

야곱이 라헬을 잃어 슬퍼하였을 텐데, 그는 또 다른 민망한 사건을 겪는다. 그의 장남 르우벤이 첩 빌하를 범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성서는 야곱에게 그 사실이 전해졌다고만 언급하고 이에 대해 더 이상 길게 언급하지 않는다. 민망한 사실을 장황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매우 심각한 사실을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르우벤이 자신의 지위를 절대화하기 위해 무리한 도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의 찬탈자가 선왕의 첩실을 차지하는 것은 자신의 지위를 과장하고 정당화는 방법이었다. 압살롬도 아버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켰을 때 마찬가지 행동을 했다. 그렇다면 르우벤의 추행은 실제로 초기 부족 시대의 어떤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미 유력한 지위에 있었던 르우벤 일파가 권력을 절대화하고자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뒷 이야기를 보면 르우벤은 사실상 장자권을 상속받지 못한다(창세기 49:3~4).  



3. 야곱의 아들들, 그리고 이삭의 죽음(23~27)


그와 같이 곡절이 많은 여행길 이야기 중간에 야곱의 아들들 이름이 각기 어머니를 따라 열거된다. 베냐민은 가나안에서 태어났는데도 다른 모든 아들들과 함께 밧단아람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도 다른 전승에서 기인한 탓일 것이다. 이 열두 아들들 이름 외에 딸 디나의 이름은 없다.  

다시 여행을 계속한 야곱은 아직 살아 계시는 아버지 이삭이 사는 곳 기럇여르바 곧 헤브론에 이른다. 이곳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살았고 죽은 곳이기도 했다. 이삭은 마침내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르는데, 두 형제 에서와 야곱이 그의 장례를 치른다. 에서와 야곱은 여전히 평화롭다.



* 다음 주제는 “에서의 자손”(창세기 36:1~4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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