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42]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 창세기 39:1~23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0-31 21:11
조회
2805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42 (2007. 10/31)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 창세기 39:1~23



1. 보디발의 종이 된 요셉(1~6)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팔려간 요셉은 이집트 왕궁의 고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한다. 보디발은 ‘라(태양신)가 주신 자’라는 뜻으로 유럽인 이름 가운데 Theodore(신의 선물)와 동일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는 듯하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비록 종의 신분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주인의 절대적 신임을 얻는다. 이 대목에서 성서는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까닭에 요셉은 복덩이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 사실은 마치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복덩이와 같은 존재가 되었던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의 주인도 그 사실을 알고 더욱 전적으로 그를 신임한다. 주인 보디발은 집안일과 모든 재산을 요셉에게 맡겨 관리할 정도였다.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복은 주인의 집안에 있는 것이든, 밭에 있는 것이든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주인 보디발은 집안일에 관한 한 스스로 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요셉에게 맡긴다. 이것은 요셉의 성실함과 지혜로움을 말해 준다. 그 어떤 의혹이나 불신도 받지 않을 만큼 요셉은 성실하고 지혜로웠던 것이다. 한 집안의 귀염둥이로만 자라던 소년이 남의 집에 종이 되었으니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러나 요셉은 그 참담한 조건 안에 주저앉지 않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조건에 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신의 진가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성실성과 지혜를 지녔다.    

요셉은 용모까지 준수하였다. 아름다운 용모에 관한 이야기는 다윗의 이야기에(사무엘상 16:18)서도 등장하는데, 아마도 그 묘사는 단순히 겉모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다윗도 처음에는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용모를 지니지는 않았다(참조. 사무엘상16:7).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존재가 된다. 요셉의 빼어난 용모에 관한 이야기 마찬가지 아닐까? 물론 천부적으로 빼어난 용모를 지녔고 또한 그 용모를 잘 가꾸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중요한 사실은 그 성실성과 지혜로움이 그 용모를 더욱 빛나게 했다는 점일 것이다. 내면의 빛으로 더욱 빛나는 용모인 셈이다. 요셉은 종이라는 하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이목을 끌 만큼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2.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은 요셉(7~10)


매력적인 존재였던 만큼 유혹의 손길 또한 가까이 있었다.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주며 동침을 제안한다. 요셉은 이 유혹을 단호히 거절한다. 요셉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한다. 주인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인적 차원에서 신의와 의리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 윤리의 차원에서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인 셈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끈질기게 요셉을 유혹했지만, 요셉은 끝내 그 유혹을 거절하고 아예 그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요셉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성실성과 지혜의 미덕에 절제의 미덕까지 지닌 인물로 드러난다. 그는 순간의 쾌락으로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릴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3. 유혹을 뿌리쳤으나 덫에 걸리고 만 요셉(11~18)


그렇게 삼가고 있었건만 요셉은 한 집안에서 주인의 부인과 아예 마주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그가 일을 보러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안 주인과 단독으로 마주친다. 안 주인은 요셉이 꼼짝할 수 없는 기회라 여기고 그의 옷을 손아귀에 쥐고 유혹한다. 이제 그의 옷깃이 안 주인의 손아귀에 붙들려있듯 요셉의 운명은 그 안 주인의 손아귀에 달렸다. 요셉은 그 손길을 뿌리치고 달아난다. 그러나 안 주인의 손아귀에 붙잡힌 옷은 도리가 없었다.

일종의 소유욕으로서 애정[욕정]은 처음부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요셉의 안 주인은 그 무안함을 견딜 수 없었다.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쥐었다고 여겨진 요셉이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다. 안 주인의 요셉을 향한 흠모의 눈길은 증오의 눈길로 돌변한다. 못 먹는 밥에 재를 뿌리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결국 요셉에게서 내벗겨진 옷은 위증의 증거물이 되고 만다. 벗겨진 그의 겉옷은 안 주인을 겁탈하려다 들켜 황망하게 도망친 증거물로 돌변하고 만다. 형제들에게 벗겨진 그의 겉옷이 위증의 증거물이 되었듯이 이번에도 안 주인에게 벗겨진 겉옷이 위증의 증거물이 된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어떤 사람을 판단한다. 요셉의 경우에는 그 겉옷이 두 번에 걸쳐 진짜 자기와는 상관없는 거짓의 증거물이 된다. 요셉은 자신에게 덧씌어진 굴레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걷는 존재였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쩌랴! 사람들은 그 진실을 알지 못한다. 요셉은 안 주인의 허위 고발로 주인의 분노를 사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여기서 주인 보디발의 분노와 처벌은 다소 미묘하다. 이집트의 관례상 간통의 경우 주인은 사형으로 요셉을 곧바로 처형할 수도 있었으나, 주인은 요셉을 왕실의 미결수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주인의 분노가 요셉을 향한 것이었는지, 조신하지 못한 부인 또는 그런 민망한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는지 미묘하다. 어쨌든 주인은 ‘드러난’ 증거로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 했고, 요셉은 그 ‘드러난’ 증거로 인한 올가미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4. 감옥에 갇힌 요셉(19~23)  


이야기의 줄거리상 요셉이 왕실 감옥에 갇힌 사태는 훗날 이집트의 왕과 직접 대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요셉에게서 위기는 언제나 기회가 된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의 신분으로 신망을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감옥에서 죄수로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신망을 얻는다. 그는 마치 보디발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옥에서도 간수장을 대신하여 감옥의 일을 맡는다.

성서는 또 다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에 모든 일이 형통하였다고 강조한다. 위기 안에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 다음 주제는 “감옥 안에서 시종장의 꿈을 해몽한 요셉”(창세기 40:1~2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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