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44] 이집트 왕의 꿈을 해몽한 요셉 - 창세기 41:1~57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1-14 21:52
조회
3507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44 (2007. 11/14) 이집트 왕의 꿈을 해몽한 요셉  - 창세기 41:1~57



1. 이집트 왕의 꿈(1~8)


감옥에서 왕의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이 출소한 후 2년이 지났다. 요셉은 그 시종장에게 억울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부탁을 했건만, 그 시종장이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바람에 꼬박 2년을 더 고생해야 했다. 바로 그 즈음 이집트의 파라오가 꿈을 꿨다. 강가에 서 있는데 살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 풀을 뜯고 있었다. 뒤를 이어 흉측하고 여윈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 살찐 암소 일곱 마리를 잡아먹었다. 다시 잠들어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토실토실하고 여문 이삭 일곱 개가 보였다. 뒤를 이어 열풍에 야위고 마른 이삭 일곱 개 피어나와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켜버렸다. 왕의 꿈은 통상 백성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파라오는 뒤숭숭하기 그지없었다. 해몽 전문가들이 곁에 있으니 물어보면 그 뜻을 알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을 것이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해몽 전문가들을 다 불러놓고 꿈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 아무도 그 꿈을 풀어내지 못했다. 파라오는 더더욱 답답했을 것이다. 바로 그 때 술을 올리는 시종장이 감옥에 있는 요셉을 생각해냈다. 파라오의 신임을 얻을 기회가 되니 그때서야 그의 머리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해타산에 밝은 인간의 마음이라니! 파라오는 즉시 요셉을 불러오도록 했다. 요셉에게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        

  

2. 이집트 왕의 꿈을 해몽한 요셉(9~36)


감옥에서 불려 나온 요셉을 두고 파라오는 자초지종을 말한다. 요셉이 꿈을 잘 풀어 기대하고 불렀다는 파라오의 말에 요셉은 꿈을 푸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파라오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기뻐하실 대답’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 말한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전문가들에게 말했듯이 꿈 이야기를 요셉에게 되풀이한다. 파라오는 아무도 풀이하지 못한 그 꿈을 더욱 끔찍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없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암소들”이라고 몸서리치듯 말한다. 이집트의 전문가들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요셉의 역할이 더욱 돋보일 수 있는 배경이 되는 셈이다.

요셉은 명쾌하게 꿈을 풀어낸다.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이 올 것을 예시한 꿈이라는 것이다. 두 번 반복된 것은 틀림없이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을 지닌다고 해석한다. 파라오의 꿈은 이집트의 경제적 상황을 적절하게 반영해 주고 있다. 왕이 서 있었던 강, 그리고 암소들이 올라 왔다는 강은 나일 강을 말한다. ‘나일 강’은 기원을 알 수 없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원문은 그저 ‘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집트에는 그 강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강은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의 젓줄이요 이집트 문명의 원천이다. 이집트의 풍요와 기근은 모두 이 강에 달려 있다. 강의 수량이 풍부하면 풍년이 들고, 그 수량이 줄어들면 흉년이 들 수밖에 없다. 살찐 소와 야윈 소가 모두 강에서 올라 왔다는 것은 그 사실을 함축한다. 풍년과 기근을 예시하는 것들이 소와 이삭인 것은 농경과 목축을 겸한 이집트의 경제상황을 말해준다.  

해몽의 진가는 그에 대한 대비책에 있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지 않은가? 요셉은 현명한 대비책까지 명쾌하게 제시한다. 진정한 통치자로서의 지혜를 발휘하도록 파라오에게 조언한다.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전국에 관리들을 보내어, 풍년 동안에 충분히 기근에 대비하도록 대안을 제시한다. 풍년 기간 동안 소출의 1/5을 비축하였다가(참조. 47:23~26) 흉년에 대비하라는 방책이었다. 꿈은 흉흉했지만, 그 대비책은 과연 파라오가 ‘기뻐할 대답’이었다.

          

3.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37~57)


파라오와 그 신하들은 요셉의 현명한 대안에 즉각 반색하였다. 그리고 지체 없이 요셉을 총리로 등용한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 함께 한 요셉은 이방의 최고통치자로부터도 인정을 받는다.

파라오는 절차를 따라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다. 파라오의 권력을 위임받은 징표로 자신의 옥새 반지를 넘겨주고, 권위를 나타내는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까지 걸어 준다. 뿐만 아니라 파라오의 병거에 버금가는 병거를 타고 호령하게 하였다. 요셉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랐다. 파라오는 누구든 요셉의 명을 따를 것을 엄명하고, 요셉에게 새로운 이름까지 부여한다. ‘사브낫바네’,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가 살리라’라는 뜻의 이름이다. 또한 파라오는 요셉을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까지 시켜 준다.

온은 태양신 라를 숭배하던 중심지로 이집트인들은 ‘라의 집’이라는 뜻으로 ‘파라’라고 부르기도 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그 도시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직역하여 ‘벳세메스’라고 불렀고(43:13), 그리스인 역시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러, 그것이 이 도시의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이 도시는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이집트의 학문과 신앙의 중심지였고, 오늘날 우리 눈에 익숙한 것으로는 오벨리스크, 곧 태양신앙의 상징탑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근대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승리의 기념품으로 약탈해 가 자기나라에 세워두고 꼴불견을 보여주고 있는 그 대상물이다.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는 요셉이 이전에 섬겼던 주인 보디발과 그 이름이 사실상 같다. 보디발은 보디베라의 축약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인물은 아니고 다른 인물이다. 어쨌든 요셉은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의 사위가 된 셈인데, 이 대목에서 성서는 그다지 비판적인 관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요셉의 이야기가 이집트와 교류가 활발했던 솔로몬 시대에 형성된 상황을 반영한다.

요셉은 나이 서른에 종과 죄수에서 일약 총리가 되어 사실상 이집트를 통치한다. 자신이 마련한 대책대로 풍년의 시기에 곡물을 잘 관리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기록하기를 중단할 정도였다고 하니 넘치고 넘쳐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풀어 기근을 해결했다.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은 두 아들을 얻는다. 하나는 므낫세요 하나는 에브라임이다. 므낫세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잊게 했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에브라임은 하나님께서 자손을 번성하게 해 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요셉은 아들들의 이름을 통해 이방의 땅 이집트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 다음 주제는 “형들과 만난 요셉”(창세기 42:1~3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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