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45] 형들과 만난 요셉 - 창세기 42:1~38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1-21 21:45
조회
2346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45 (2007. 11/21) 형들과 만난 요셉  - 창세기 42:1~38



1. 가나안 땅의 기근과 야곱의 가족(1~5)


기근은 이집트 땅에만 든 것이 아니었다. 인근의 모든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 변변한 물줄기마저 없는 가나안 땅의 기근은 더욱 극심하였을 것이다. 요셉의 형제들은 얼굴만 쳐다보는 형국이었다. 아버지 야곱은 이집트 땅에 곡식이 있다 하므로 그곳에 가서 곡식을 구해오도록 한다. 열 명의 형제들을 보내고 막내 베냐민만은 남긴다. 베냐민은 아버지에게 요셉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2. 형들과 만난 요셉(6~17)


요셉의 형들은 이집트 땅을 찾아가, 총리로서 곡식관리 책임을 맡은 요셉을 만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다. 요셉은 그들을 알아보았지만, 그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요셉은 옛날 꿈을 환기한다. 그러나 곧바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형들을 몰아친다. 곡식을 구하러 온 그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고 다그친다. 가나안과 통하는 이집트 동북부지역은 외부세력의 침입경로가 되기 때문에 요셉이 가나안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충분히 그럴 듯한 상황이었다. 물론 요셉이 형제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운 것은 분명한 목적 때문이었다.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결과적으로 권력을 쥔 아우에게 어쩔 수 없이 형들이 굴복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요셉은 형들이 과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는 기미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진정한 화해를 원하였다. 그 때문에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상황에서 형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시험을 한다. 당황한 형들은 자신들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진력을 다한다. 그들이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은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가족 상황을 소상히 말함으로써 어떤 정치세력과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뿐이었다. 요셉은 형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도록 요구한다. 집에 막내 아이가 있다면, 그 막내 아이를 데리고 옴으로써 그 진실을 입증하라고 한다. 요셉은 철저하게 이집트 왕의 권위로 그 명령을 내린다. “파라오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왕의 위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도 일반적인 것이었다(참조. 사무엘하 15:21). 요셉은 열 명의 형제들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인질로 붙잡아두고 한 사람만 보내 막내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일단 형들을 감옥에 가두었다.


3.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요셉의 형들(18~25)


그러나 사흘 만에 요셉의 마음은 조금 누그러진 듯하다. 사흘은 성서에서 흔히 위기의 전환을 상징하는 기간에 해당한다. 요셉은 이전에 파라오의 권위를 두고 맹세한 것과 달리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 요셉은 형제들 앞에서 여전히 이집트 총리였기에 그 맹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의지할 데 없는 이방인들을 존중한다는 뜻이었다(참조. 20:11). 요셉은 애초 이야기했던 것과 달리 한 사람만 남고 다른 모든 형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막내아우를 데리고 오도록 한다. 아마도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이 조건이 전의 조건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형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고 그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한 것이 진정한 목적이었으므로 그 방법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형들은 이 대목에서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분명하게 뉘우친다. 형제들은 이집트 총리인 요셉이 통역을 내세워 대화를 한 까닭에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줄 알고 그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요셉은 형제들 사이의 불화가 치유될 수 있는 실마리를 확인하고서 혼자 눈물짓는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궁지에 빠져 비로소 잘못을 뉘우친다. 이것은 형들이 요셉에게 용서를 받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둘째 형인 시므온만 남기고 막내를 데리러 떠나는 형들에게 요셉은 호의를 베풀어 그들이 알지 못하게, 곡식을 사기 위해 치렀던 돈을 되돌려 보낸다.


4.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가는 요셉의 형들(26~28)


요셉은 형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 내막을 알지 못하는 형들은 도리어 당황한다. 한 형제의 자루에서 돈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형제들은 이제 도둑의 누명까지 쓰게 되었다고 두려워한다.


5. 야곱의 탄식(29~38)


형제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 야곱에게 자초지종을 말한다. 형제들의 이야기는 다소 과장되어 있다. 간첩의 누명을 벗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덧붙여 그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이집트에 드나들면서 장사까지 하게 될 수 있으리라 말한다. 아마도 아버지 야곱을 조금이나마 안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안도시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의 짐에서 돈이 발견되자 분위기는 심각해진다. 한 사람만 도둑 누명을 쓰게 되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도둑 누명을 쓰게 되었으니 내막을 알지 못하는 그 형제들에게 시련은 더욱 가혹한 것이었다. 야곱의 수심은 더욱 심각하다. 그런 상황이라면 베냐민을 보낸다 한들 그 목숨이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하나같이 다 나를 괴롭힐 뿐이로구나!” 야곱은 탄식한다. 아마도 이쯤 되면 실리를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집트에 혼자 남은 형제 시므온을 희생시키고 자신들은 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형제들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르우벤은 단호하게 자기의 두 아들을 두고 막내 베냐민을 살려 데리고 올 터이니 자신들의 진실을 입증할 길을 허락해달라고 한다. 야곱은 도무지 안도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자식을 다 잃고 죽어서까지 마음 편히 잠들 수 없게 될까봐 두려웠다. 야곱의 탄식은 깊어만 간다. 이처럼 야곱의 깊은 탄식과 르우벤의 결의는 더욱 대조된다. 형제들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이 형제간 화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 다음 주제는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떠나는 요셉의 형들”(창세기 43:1~3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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