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46]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떠난 요셉의 형들 - 창세기 43:1~34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2-05 21:57
조회
2346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46 (2007. 12/5)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떠난 요셉의 형들  - 창세기 43:1~34



1. 아버지를 설득하는 요셉의 형들(1~14)


자신들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집트에 붙잡혀 있는 시므온을 구하기 위해서 형들은 요셉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자식들을 다 잃을까봐 걱정하는 아버지 때문에 형제들은 곧바로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곤경은 선택과 결단을 유도한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더 심해지고 마침내 이집트에서 가져 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때 아버지는 형제들을 이집트로 다시 보낼 작정을 한다. 베냐민을 보내라는 요셉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결단이 서지는 않았다. 당장 식량부족의 난관을 타개해야 한다는 의지만 앞섰다. 그 때 형제들 가운데 유다가 요셉과의 약속을 아버지에게 환기시킨다. 42장에서는 르우벤이 나섰으나 여기서는 유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유다는 막내를 데리고 갈 수 없으면 이집트로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버지(이번에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불린다)는 여전히 결단이 서지 않았다. 어찌하여 아우가 있다는 말을 해서 괴롭히느냐고 탄식한다. 유다는 요셉이 가족 상황을 낱낱이 캐물었다고 답한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고, 다른 형제가 더 있는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자기 가족과 형제에 대한 요셉의 깊은 관심을 시사하는 내용이지만, 지금 유다의 이 이야기는 자신들의 입장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피력하는 것이다. 유다는 42장에서 마치 르우벤이 다짐했던 것처럼, 단호하게 결의를 밝힌다. 막내를 무사히 다시 데리고 오지 못한다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한다. 유다는 아버지를 다그친다. 아버지가 머뭇거리지 않았다면 벌써 두 번도 더 다녀왔을 것이라 말한다.

사실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도리 없이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기로 작정한다. 한편으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운명에 내맡기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아버지의 준비는 철저하다. 가나안 땅에서 나는 진귀한 물품으로 선물을 꾸리고, 이전의 식량 값까지 포함하여 돈도 두 배로 챙겨 보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할까?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감동시켜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게 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2. 다시 이집트에 도착한 요셉의 형제들(15~25)


선물을 꾸리고 돈을 두 배나 지닌 형제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에 도착하였다. 요셉은 형제들을 보고 관리에게 밥상을 차리도록 명한다. 형제들은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관리인에게 인도를 받으면서 형제들은 저간의 사정을 밝힌다. 자신들은 곡식 값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곡식 값에 해당하는 돈이 고스란히 곡식 자루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자신들은 혐의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 관리인은 그들의 염려에 개의치 않는 태도다. 그저 따듯한 인사를 보낼 뿐이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두려워말라!’ 하는 인사다. 관리인은 인질로 잡혀 있던 시므온을 데리고 나오고, 그들이 발을 씻도록 해줄 뿐 아니라 나귀들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3. 요셉의 환대(26~34)


환대를 받으면서도 걱정을 떨칠 수 없었던 형제들 앞에 요셉이 나타난다. 형제들은 선물을 요셉 앞에 내놓고 엎드려 절한다. 요셉의 꿈이 현실이 되었음을 다시 환기시킨다. 그런데 두려워하고 있는 형제들 앞에 나타난 요셉은 형제들을 추궁하지 않는다. 안부를 묻고 난 다음,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곧바로 베냐민에 눈길을 돌린다. 자기의 유일한 동복형제 베냐민을 향한 요셉의 마음은 각별하다. 요셉은 베냐민에게 축복을 한 다음,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워한다. 형제들을 처음 다시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요셉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잠시 자리를 피했다 들어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겠지만, 요셉은 더 극적인 장면을 예비해나간다. 요셉의 형제들은 밥상을 받는다. 하지만 요셉의 집에서 일하는 이집트 사람들과는 별도로 상을 차린다. 그것은 이방인 곧 히브리인들과 밥상을 같이하지 않는 이집트의 일종의 정결례를 따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것은 형제들을 홀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집트의 예법을 정중하게 따랐을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형제들에게 밥상을 차려 주면서 요셉은 베냐민에게는 다섯 몫이나 더 준다. 그것은 요셉의 각별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형제들은 아직 자신들이 염려하는 사태가 해결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각별한 환대로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취하도록 요셉과 함께 마신다. 파라오의 권위를 대신한 요셉이 자리를 함께 하고 밥상을 나눴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마음이 누그러졌을 것이다.



* 다음 주제는 “베냐민과 요셉의 은잔”(창세기 44:1~3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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