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20]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창세기 19:1~38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3-14 21:22
조회
4561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20 (3/14)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 창세기 19:1~38



1. 소돔의 타락상(19:1~11)


두 천사가 소돔성에 이르렀을 때 롯은 성문에 앉아 있다가 이들을 환대한다. 물론 롯은 그들이 특별한 임무를 지닌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기꺼이 맞이하고 있을 따름이다. 롯은 나그네에 대한 환대를 신성한 의무로 여기는 고대적 관습을 지키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의로운 롯의 행동은 이어지는 소돔성 사람들의 태도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한 밤중 그 나그네들이 롯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소돔성 각 마을의 젊은이 노인들이 몰려와 그들과 성행위를 하고자 한다.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좀 해야겠다.” ‘상관하다’는 히브리어 원문으로 ‘알다’로서, 성행위를 뜻한다. 남색(男色), 비역 또는 수간(獸姦)을 뜻하는 영어의 sodomy는 이로부터 유래한다. ‘소돔사람들의 짓거리’라는 뜻이다. 이 사태는 소돔의 타락상을 단적으로 말한다. 나그네를 환대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를 지키지 않고 그들을 자신들의 노리개감으로 대상화한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나그네를 보호하는 관습은 사회적 약자를 돌봄으로써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돔성은 그 인간관계 자체가 파괴되어 있다. 더욱이 그 인간관계의 파괴는 성적 타락과 결부되었다. 성서의 전통은 가나안의 성적 문란을 혐오한다. 특별히 가나안의 풍요제의와 관련하여 성적 타락에 대해 극도로 혐오한다. 성서 기자는 소돔성의 타락상을 가장 극악한 형태로 본 것이다.

절망적인 사태에 직면하여 롯은 필사적으로 대응한다. 손님들 대신에 딸들을 내놓겠다고 한다. 딸들을 침입한 남자들에게 내놓은 것 역시 정당할 턱이 없다. 하지만, 롯은 자신이 보호하는 나그네들이 피해를 입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차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덤벼드는 소돔 사람들 의 기세 앞에서 그 선택마저 쓸 떼 없이 되었다. 소돔 사람들과 한 통속이 될 수 없었던 롯은 소돔 사람들에게 외래인 취급을 받고 그의 제안은 거부당한다.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소동을 피우는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한다. 나그네들이 롯을 안으로 들인 다음 문을 닫고 그 집에 몰려든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개입이다.        


2. 롯과 그 가족의 탈출(19:12~29)


천사들은 긴박하게 롯 가족의 탈출을 돕는다. 롯의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아 소돔성을 탈출하도록 이른다. 롯은 자기 딸들과 약혼한 사윗감들에게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망시리리라는 사실을 알린다. 하지만 그들은 롯의 이야기를 농담으로 알아듣고 무시해버린다. 그들은 구출받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동틀 무렵 천사들은 롯을 더욱 다그친다. 롯은 꾸물거렸다. 당연할 것이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요 자신의 소유가 다 있는 그 곳을 쉽사리 떠나기 어렵다. 그렇게 롯이 꾸물거리자 천사들은 손수 나서 그 가족들을 성 밖으로 대피시킨다. 강력한 하나님의 개입 행위이다. 그렇게 롯 가족을 구출하면서 또 당부를 한다. 뒤를 돌아보거나 머뭇거리지 말도록 한다. 소돔의 타락으로부터 단호하게 절연하라는 뜻이다. 미련과 두려움으로 불안해하는 롯을 두고 천사들은 안전을 약속한다. 안전하게 탈출할 때까지 결코 재앙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한다. 그 약속을 따라 롯의 가족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 롯의 가족이 작은 성 소알에 이르렀을 때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로 멸망을 맞이한다. 시시각각으로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그런데 롯의 부인은 그 와중에 천사들의 당부를 잊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탓이었을 것이다. 타락의 현장과 단호하게 결별하지 못하는 이의 운명을 말한다.

다음날 아침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넓은 들이 있던 땅을 내려다본다. 아브라함은 폐허 위에 솟아오르는 연기를 보며 무상함을 느낀다. 아브라함은 이로써 정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대한 목격자가 된다.  

롯이 택했던 풍요로운 땅은 그처럼 위험스러운 땅이었다. 결국 그 풍요로움은 계속될 수 없었고 마침내 폐허의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 성 멸망 이야기는 풍요로운 도시문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 풍요로움은 사람들 사이에 존중하는 관계가 확립되어 있을 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 관계가 무너질 때 물질적 풍요로움은 재앙의 화근이 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경고하고 있다. 그 점에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실재했을까? 그리고 그 급작스러운 폐망은 역사적 사실일까? 오늘날 사해 연변에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해 2700년경에 큰 도시 문명을 일구고 있었으나 2200년경 그 명맥이 끊긴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고대의 해안선과 오늘날의 해안선이 다르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아마도 사라진 고대 도시에 대한 기억을 가나안 지역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의 시선에서 재구성되었을 것이다.


3. 모압과 암몬의 기원(19:30~38)


풍요의 땅에 벌어진 재난을 피해 목숨을 구한 롯은 아예 산으로 들어가 굴속에서 살아간다. 애초 풍요로운 땅을 선택했던 롯이 그곳에서 안녕을 구가하지 못하고 산속 동굴에서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기존의 재산이나 인적 관계로부터 완전히 결별한 상태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에게서 씨를 받아 각기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들은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의 조상이 된다. 이 이야기는 매우 미묘하다. 이 사실은 고대 사회에서 아들을 가짐으로써만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여인들의 필사적인 노력을 뜻한다. 성서가 전하는 바와 같이 고대사회에서 그와 같은 일은 종종 있었고, 그와 같은 근친혼 관습은 무조건적 금기로 정죄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자 동시에 종족을 보존하는 방법으로 용인되었다. 그러나 근친상간이 명백한 범죄행위로 간주되었을 때 이 이야기는 매우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요인을 지니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이중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는 모압과 암몬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구원 손길 안에 있는 백성이며 또한 이스라엘 백성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동시에 그들을 근친상간의 결과로 탄생한 후손들이라고 경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태도를 함축한다.          


  


* 다음 주제는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창세기 20:1~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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