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25] 이삭의 결혼 이야기 - 창세기 24:1~67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4-25 21:37
조회
2194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25 (4/25) 이삭의 결혼 이야기 - 창세기 24:1~67



1. 아브라함의 마지막 소원(24:1~9)


이스라엘 조상들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길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짜임새 또한 탄탄하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야훼 기자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후대에 훨씬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은 집안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나이든 종에게 가나안 땅이 아닌 자기 고향 곧 하란에 가서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오도록 명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선민으로서 그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과의 혼인관계를 피하려고 한 것이다. 성서는 가나안의 풍요제의를 혐오하는 경향이 강한데, 선민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풍요종교의 습합을 배제하려는 것을 뜻한다.

늙은 종이 신부감을 구하러 가기에 앞서 재미있는 맹세의식을 치른다. 아브라함은 종에게 자기 다리 사이에 손을 넣고 맹세하도록 한다. 개역성경은 이를 환도뼈 아래 손을 넣은 것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회적 표현이며 더 정확하게는 성기를 붙잡는 것을 말한다. 생명의 근원에 맹세시킴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뜻을 이루려는 것을 뜻한다(47:29 참조). 아마도 아브라함은 종에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달라고 명을 내린 후 임종을 했을 것이다. 종이 이삭의 신부감을 데리고 왔을 때 아브라함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25장에서 아브라함의 죽음을 별도로 언급되어 있는 까닭에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의 죽음에 관한 언급은 삭제되었을 것이다.

종이 집을 떠나면서 만일 이삭의 신부감이 될 만한 여인이 따라오지 않으려고 하면 어찌하느냐고 걱정을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환기시키며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라 안심시킨다.  



2. 이삭의 신부감 구하는 이야기(24:10~61)


마침내 종은 낙타 열 마리에 온갖 좋은 선물을 싣고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향한다. 곧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이다. 아람나하라임은 ‘강 사이의 아람’이라는 뜻으로 아람 사람들이 강(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사이에 정착하게 된 사실을 시사하고 있어 아브라함 당시보다는 후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리스어 메소포타미아(‘강 사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이전 성서는 그 지역을 그와 같이 불렀다. 그 지역은 오늘날 이라크를 말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성문 밖에 우물곁에서 낙타를 쉬게 하며 기다린다. 신부감을 구하러 간 사람이 우물가에 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성문 어귀가 주로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장소에 해당한다면 우물가는 여인들이 모이는 장소다. 마침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고 종은 우물가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자기가 물을 달라 하면 자기에게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까지 물을 주는 여인을 하나님이 점지하신 이삭의 신부감으로 알겠노라 기도한다. 하나님을 시험한 셈인데, 인간의 기도로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강조하는 미담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종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그 앞에 나타났다. 하나님께 기도한 대로 리브가는 자신에게 물을 마시게 해줄 뿐 아니라 낙타들에게까지 물을 마시게 해준다. 더욱이 그 처녀는 아브라함의 친척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척척 들어맞는단 말인가? 아브라함의 종은 일단 리브가에게 선물을 주고 그 집에 머물고자 한다. 리브가의 집에는 오라버니 라반이 있었고,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을 맞이한다. 라반은 동생이 선물을 가져온 것을 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묻고, 그 종에게서 자초지종을 듣는다.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과 아버지 브두엘은 그 사연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 답한다. 혼인의 결정권은 남자들에게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가족들을 떠나 먼 길을 가야 하는 리브가를 두고 서운하지 않을 턱이 없다. 특히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며칠만이라도 더 머물렀다 가면 안 되느냐 청한다. 그 대목에서만 딸의 의사를 확인한다. 리브가는 곧바로 떠나겠다 답한다. 가족들은 리브가에게 복을 빈다. 그런데 이 축복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혼인축복이었지만 정치적인 색채까지 띠고 있다. 이는 이방민족들과 갈등 관계에 있는 후대 이스라엘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흔적이다.



3. 맺음말 (24:62~67)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대로 종은 목적을 이루고 되돌아온다. 그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삭이었다. 아브라함이 임종한 후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삭은 그 때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 네겝 지역에 살고 있었다. 리브가가 저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를 보고 누구냐 묻고 마침내 만나는 장면은 매우 문학적이다.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탄탄한 이야기이지만 이 결말은 더더욱 아름답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일단락된다.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을 감상한 것으로도 이 본문을 읽는 의미는 족하겠지만, 그 의미를 또한 지나칠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손길은 매우 사사로운 개인의 일상에까지 뻗치고 계시다는 것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대할 때 그 따뜻한 손길을 느낌과 동시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지 않은가?    

      

        

      

* 다음 주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창세기 25:1~3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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