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29]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 - 창세기 27:1~4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6-13 21:28
조회
2273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29 (6/13) 형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 - 창세기 27:1~45



1. 아버지 이삭과 큰 아들 에서(27:1~4)


이삭이 나이가 들어 눈이 어두워질 무렵 맏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 약속을 한다. 맏아들을 사랑하는 이삭은 축복을 해줄 터이니 사냥을 해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가져오라 한다. 이 장면은 매우 평온한 일상의 질서를 당연하게 그리고 있다. 죽기 전에 아들을 축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축복한다는 것도 매우 관례적이다. 아들을 축복한다는 것은 축복하는 이의 생기가 그 아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였기에 축복하기 전에는 평소 즐기는 별미를 드는 것이 관례였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맏아들을 축복하는 것 또한 의문의 여지없이 당연했다. 이 이야기의 첫 대목이 그리고 있는 장면은 흔들리지 않는 가부장적 질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그 맏아들은 사냥을 즐겼다. 이 사실은 어쩌면 매우 강력한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2. 어머니 리브가와 작은아들 야곱(27:5~29)


아버지와 맏아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한 관례대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관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 리브가와 둘째아들 야곱이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아버지와 맏아들의 대화를 엿듣고 ‘모반’을 꾀한다. 당연한 상식을 뒤집어엎을 일이 어머니에 의해 주도된다. 어머니 리브가는 맏아들이 아닌 둘째아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일을 착착 진행한다. 형 에서와는 전혀 다른 외모와 기질을 지닌 둘째 야곱을 형과 같이 꾸며 마침내 형에게 내릴 축복을 가로채는 데 성공한다.

성서의 기자는 이 일에 대해 일체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사실적 정황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와 야곱은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어기고 속임수를 쓰고 있다. 눈먼 아버지를 속였으니 패륜과도 다름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머니 리브가와 야곱은 불공정하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아니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에서 편에서 보자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당연한 상식으로 여기는 가치관과 질서를 전복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맏아들을 축복하고 장자권을 넘겨주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어머니 리브가와 야곱은 그 자체를 거부한다. 그것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아버지와 털복숭이 외모에 외향적인 형에 맞서 어머니와 고운 피부의 내향적인 아우가 상식을 엎어버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강한 자의 당연한 승리가 아니라 약한 자의 놀라운 승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억되고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는 가련한 떠돌이로서 조상들의 고단한 삶, 그리고 정착 이후에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압박을 당하던 현실을 먼 조상에게 투사한 데서 형성된 것이다. 특별히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내용은 정착 시대 이후의 상황을 반영해 주고 있다. “땅을 기름지게 하고 곡식과 포도주가 넉넉하게 되리라”는 약속은 정착 농경시대에 어울린다.          


3. 분노하는 에서(27:30~40)


축복을 빼앗긴 사실을 안 형 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 맏아들에게 내려야 할 복을 둘째에게 줘버린 아버지의 낭패감도 컸다. 현대적 관념으로 보자면 번복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복잡한 법적 절차를 통해야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고대적 관념으로 그것은 불가한 일이었다. 축복은 번복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에서를 저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도 축복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부수적인 축복일 수밖에 없었지만 에서가 생존할 조건을 보장한다. 빈약한 땅에 살며 아우를 섬기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아우의 멍에를 벗어날 길 또한 있을 것이라 약속한다. 이삭의 이 약속 또한 후대의 정착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에서의 후손으로 간주되는 에돔족은 한 때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지만 그 지배에서 벗어난다(열왕기하 8:20~22).

어쨌든 에서로서는 분통을 참을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동생 야곱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보복의 혈전으로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아들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킨다. 야곱과 에서 이야기의 서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 다음 주제는 “야곱의 피신”(창세기 27:46~28:2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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