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31] 라반과 야곱 - 창세기 29:1~30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6-27 21:27
조회
2322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31 (6/27) 라반과 야곱 - 창세기 29:1~30



1.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한 야곱(29:1~14)


이제부터 이야기는 야곱과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관계가 중심을 이룬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으로 고대 사회의 관습 등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던 야곱은 줄곧 길을 걸어 마침내 목적지 근처에 도달했다. ‘동방’ 곧 가나안 지역의 북동부 시리아 지역에 이른 야곱은 양떼들과 목자들이 모여 있는 우물에 이른다. 이미 자주 보았다시피 우물은 양떼들이 물을 먹는 장소로서,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 우물에 이르러 야곱은 자신이 어디쯤 왔는지를 가늠하려는 듯이 목자들에게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다. 이들이 하란으로부터 왔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목적지에 근접해 있음을 알았다. 야곱의 질문 공세는 숨가뿌게 이어진다. 그의 외삼촌 라반을 아는지 묻고 안부까지 묻는다. 목자들이 대답이 채 끝나지도 않았을 듯싶은데, 마침 저쪽에서 그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온다. 유목 시대에는 여자들도 양떼를 몰고 다녔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자신이 알아야 할 사항을 다 알아 여유가 생긴 걸까? 야곱은 참견을 하기 시작한다. 아직 양떼를 모아들여야 하는 때도 아닌데 여기서 웅성대고 있냐고 묻는다. 목자들은 그 지방의 중요한 관습을 말한다. 들판의 여러 양떼들이 우물에 다 모였을 때 비로소 무거운 돌판을 걷어내고 함께 물을 먹인다고 했다. 아마도 그 돌판을 걷어내는 일은 여럿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이 귀한 사막 지역에서 물이 독점되지 않도록 하는 관습이었을 것이다.

라헬이 우물에 이르렀을 때 야곱은 무척 성급하다. 힘은 또 어디서 나왔을까? 혼자서 우물의 덮개돌을 밀쳐내고 라헬의 양떼들에게 물을 먹인다. 게다가 다짜고짜로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을 소개한다. 야곱과 라헬의 운명을 예시라도 하듯 둘 사이의 대면과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척되고, 라헬은 급히 뛰어가 아버지 라반에게 야곱의 소식을 전한다. 라반 역시 지체 없이 뛰쳐나와 야곱을 맞이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라반은 피붙이 야곱을 반갑게 맞이한다.                



2. 야곱의 결혼(29:15~30)


라반의 집에 야곱이 머물면서부터 이야기의 분위기는 다소 달라진다. 아마도 한 달간은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평안하게 머물렀던 모양이다. 한 달이 지난 다음 라반은 야곱에게 제안을 한다. 야곱과 라반 사이의 긴장이 싹트는 순간이다. 물론 라반은 호의적인 제안을 한다. 앞으로 그 면모가 차차 드러나겠지만 라반은 꽤나 이재에 밝고 노회한 사람이다. 라반은 조카 야곱에게 거저 일을 시킬 수 없으니 그 대가를 어찌 했으면 좋을지 의중을 묻는다. 어떤 집에서 통상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몇 부류가 있었다. 종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일을 했고, 더러 목자들 가운데는 보수를 받는 이들이 있었다. 친척의 경우는 다소 모호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에게 보수를 주겠다고 한다. 야곱은 라반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한다. 첫째 딸 레아도 있었지만 라헬보다 덜 예뻤던 모양이다. 표준새번역은 레아가 ‘눈매가 부드러웠다’고 했으나 개역은 ‘안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지 눈빛이 빛나지 않았던지, 동생 라헬에 비해 그 용모가 쳐졌다. 야곱은 칠 년 동안 일할 테니 그 대가로 라헬을 달라고 한다. 라반은 흔쾌히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당시 관습상 사촌은 최선의 구혼자로 간주되었기에(아랍인들 사이에서 아내는 ‘삼촌의 딸’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제안은 마다할 게 없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한 까닭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며칠같이 느끼며 일했다. 남자가 일을 해주고 여자를 데려오는 관습은 여자를 마치 재산처럼 간주했던 고대적 발상을 보여 주는 한편 우리의 고대 결혼 관습, 예컨대 고구려의 서옥제와 같은 결혼 관습을 연상시킨다. ‘장가간다’는 말이 함축하는 뜻이나 데릴사위제 등도 그와 같은 관습과 상관이 있다.  

그렇게 칠년을 일하고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라반은 속임수를 쓰고 말았다. 둘째 라헬 대신에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결혼식 때 여자가 베일을 썼기 때문이었다. 속임수에 항변하는 야곱을 보고 라반은 큰 딸을 두고 작은 딸을 먼저 시집보내는 것은 법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작 말할 것이지 왜 이제야 말하는 것일까? 라반의 노회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큰딸이 시집가기 어려워 보여서였을까, 아니면 작은 딸을 빌미로 야곱의 노동력을 더 사용하려는 의도였을까? 어떤 이유든 결과적으로 라반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었다. 맏이와 둘째 사이의 위계가 분명했던 당시 관습적 질서 안에서 야곱은 다시 피해를 입는 셈이다. 그것을 부정했다가 위협을 당해야 했는데, 또 당할 줄이야! 그러나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다시 칠년을 더 일했다. 레아와 혼례를 치르고 칠일 후 곧바로 라헬과 다시 혼례를 치르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칠년을 더 일해야 했다. 외삼촌 라반의 노회함에 야곱은 걸려들었다. 라반은 일종의 ‘지참금’을 주는 데도 인색했다. 각기 여종 하나씩만, 곧 레아에게는 여종 실바를 라헬에게는 여종 빌하를 딸려 보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할 때 유모와 몸종들이 여럿이 함께 따랐다는 것(24:59, 60)과는 대조된다. 결국 노회한 외삼촌 라반과, 바로 그가 대변하는 기득권 질서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야곱 사이의 긴장으로 다음 이야기가 계속된다.




* 다음 주제는 “야곱의 자식들”(창세기 29:31~30:2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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